일신상의 이유로 다소 늦게 목록을 작성하게 됐다. 어차피 늦은 것 좀 더 여유를 두고 규모도 늘려 3월 말이나 4월 초를 목표로 작성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지만, 그때도 그때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을 듯하고, 거기까지 늘어지면 추진력을 잃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잠을 줄여 완성했다.

* * *

 2015년은 영화 애호가이자 홈비디오 타이틀 수집가로서 여러모로 뜻깊은 해였다. 먼저 영화 애호가로서 내가 있는 자리와 태도에 대한은 고민이 있었다. (저널리즘적인 것과는 거리를 둔) 평론이나 영화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채 곧잘 영화와 영화 보는 사람을 줄 세우는 한편, 이상할 정도로 권위와 명성에 휩쓸려 특정 영화인이나 영화를 숭배하는 데에 몰두하는 한국식 씨네필의 태도에 대한 환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졌다. 내가 바라는 영화 애호가는 자신의 확신이 고정관념일 수 있음을 알고 언제든지 이를 회의하며 구부리고 이전의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한편, 동시대의 유행에 종속되지 않은 채 언제나 침을 꼴깍 삼킬 만한 미지의 경험을 찾아 헤매는 관객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나는 영어권의 홈비디오 타이틀 애호가, 제작 관련자, 리뷰어, 혹은 홈비디오 타이틀에 관한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 영화 자체도 좋지만, 돈을 위해서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든 영화를 고르고, 이야기하고, 권하고, 온 힘을 다해 관련 자료를 끌어모아 전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없이 편안하다. 이에 따라 영어권 포럼을 둘러보거나 팟캐스트를 듣는 일도 늘어났고, 홈비디오 타이틀의 소책자나 부록도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펴보게 됐다. 당연히 이 목록을 작성하는 데에도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타이틀을 제작한 제작사의 노력이 큰 결정 요인으로 작용했다.

 홈비디오 타이틀 수집가로서 가장 큰 변화라면 마침내 지역 코드 B 고정 Blu-ray 타이틀에 대한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이겠다. 몇 년 전부터 집에서 Blu-ray 드라이브를 갖춘 데스크탑에 AnyDVD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었기에 사실 코드 B 타이틀을 감상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십 년 넘게 PC보다는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있는 공동체 상영실을 주로 이용해 왔던 감상자로서, 상영실에서 재생할 수 없는 코드 B 타이틀에 대한 거부감을 완전히 떨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상영실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거리를 두고 데스크탑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데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보니 마침내 '이 영화는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볼지도 모르니 상영실에서도 상영할 수 있는 코드 A로 사야 해' 라는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달 전에는 마침내 코드 B 재생이 가능한 Blu-ray 플레이어도 손에 넣었다. 이제는 거칠 것이 없다. 결과는? 끔찍하다. 2015년의 구매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British Invasion"이다. 아래 목록에서는 영국 타이틀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테지만, 그건 단지 내가 2015년에는 2015년 출시작보다는 지난 몇 년 동안 '밀린' 코드 B 타이틀을 뒤늦게 사모으는 데에 더 주력했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대체 왜 그렇게 굉장한 Blu-ray 제작사가 많은 걸까? Eureka와 Arrow Films, BFI는 지옥의 세 군주들이고, Studio Canal이나 Network, Signal One 등도 장차 끝없이 내 지갑을 털어가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미국에서는 출시 소식이 없거나 아쉬움이 남는 모습으로 출시된 영화를 놀라운 품질로 공급해주고 있다. 더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코드 A 시장에서 벗어나고 보니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프랑스나 독일 타이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최근에 체코 타이틀을 샀다는 얘기 했던가? 이 변화는 더없는 지복과 함께 통장에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니 영어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데에 거부감이 없고 외국 타이틀을 사는 데에도 익숙한 애호가들이여, 코드 B의 문을 당장 여시든가 아니면 영영 닫아거시기를.

 또한 2015년은 정말 미친 듯이 타이틀을 구매한 해였다. 이건 어느 정도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2016년에 내 생활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을 예정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홈비디오 타이틀 구매 자체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월동 준비하는 다람쥐가 된 기분으로 좀 무리해서 마구 사들인 감도 없지 않았다. 설령 앞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타이틀을 구매할 수 있다 해도, 2015년의 소비 패턴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꽤 확실해 보인다. 고작 2년째에 김 빠지는 소리지만, 어쩌면 이렇게 즐겁게 이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당분간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부디 그렇지는 않기를 바란다.

* * *

 말이 나온 김에 소비자로서 느끼는 홈비디오 타이틀 시장에 대한 불안도 조금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매년 살 만한 타이틀이 차고 넘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홈비디오 타이틀 수집가가 '요즘은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매달 집안 기둥 뿌리 하나씩 뽑아갈 만큼 매력적인 타이틀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곧 시장 전체의 성장이나 안정성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Arrow Films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자신감과 성장의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게 시장을 확장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Twilight Time의 닉 레드먼이 수차례 지적했듯, 자본이 넉넉한 메이저 스튜디오는 홈비디오 타이틀 시장에서 점점 발을 빼고 있다. 지금 고군분투하는 것은 그 스튜디오에서 소유하고 있는 영화 판권을 사서 물리 매체로 제작하는 소규모 회사들이다.

 개별 소비자로서 보고 싶고 사고 싶은 새 타이틀이 끊임없이 쏟아진다는 데에도 약간의 허상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를 소장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좀 더 늘어났고, 나아가 구매 의사를 확립하기 전에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타이틀 비용을 지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문득 한국의 만화 시장이 생각난다. 현재 여러 만화 출판사에서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위의 만화들을 무삭제에 큰 판형으로 고급스럽게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은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만화책이 전반적으로 극심하게 안 팔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코어 독자층의 지갑을 열도록 애쓴 결과이며, 이 시장이 정말로 어렵다는 증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홈비디오 시장도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규모는 줄어드는 가운데 생산자 측에서 고급화, 한정화 전략을 취하여 소수 소비층의 더 적극적인 지출을 유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플레인 아카이브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한국 Blu-ray 시장은 특히 이런 상황이 심화되어 기형적인 경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도 점점 이런 변화가 늘어남을 피부로 느낀다. Warner Bros.나 20th Century Fox에서 내놓은 고전기 할리우드 박스 세트를 10-20달러 정도 주고 사면 적게는 서너 편에서 많게는 십여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DVD 시절과 비교할 때 상황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든 타이틀을 한정 생산하는 Twilight Time은 물론 Arrow Films와 Eureka에서도 부분적으로 한정판 전략을 채택하게 되었고, Mondo Macabro나 Synapse Films 같은 영세 업체는 특히 그렇다. 정말로 아무도 모르는 영화라면 모르지만, 존 포드의 [내 사랑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 1946)]이나 다리오 아르젠토의 [짙은 빨강(Profondo rosso, 1975)] 같은 저명한 장르 고전조차도 그런 식으로 한정판 전략을 취하고 있지 않나.

 2016년 내 홈비디오 타이틀 수집가로서의 전망이 불안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출은 아마도 줄어들 것이다. 뒤늦게 사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원하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외국 타이틀은 물론이고 간혹 구매욕을 자극하는 한국 타이틀마저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시장이 언제까지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인구 수 대비 3천 장 규모의 시장이라면 오래 버터리라 믿어야 하려나.

* * *

 제목의 "권해보고 싶은"이라는 표현에는 주석이 필요하다. 사실 이 목록은 내가 가장 좋아한 2015년 출시 타이틀 열한 편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2015년 출시 타이틀 열한 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목록에는 2015년에 출시됐으며, 내가 손에 넣었고, 그해 최고의 타이틀로 꼽을 만하며, 아직도 안 산 사람이 있다면 대체 뭐 하는 거냐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은 영화와 타이틀이 다수 빠져 있다.

 이런 타이틀만 한가득이면 재미없잖아


Day for Night (지역 코드 A / Criterion)






Man of the West (지역 코드 B / Eureka)






My Darling Clementine + Frontier Marshal (지역 코드 B / Arrow Films)






Battles Without Honour and Humanity: The Complete Collection (지역 코드 AB / Arrow Films)






Videodrome (지역 코드 B / Arrow Films)






The Prowler (지역 코드 A / VCI)






The Shôhei Imamura Masterpiece Collection (지역 코드 B / Eureka)






Emperor of the North (지역 코드 ABC / Twilight Time)






Kwaidan (지역 코드 A / Criterion)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 영화들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웬만큼 훌륭한 타이틀이 나오리라는 점도 이미 예상했던 것을. 따라서 이 타이틀들이 안겨줄 수 있는 '뜻밖의 즐거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목록은 권해보고 싶은 타이틀 중에서도 그런 '안전빵'들을 제외한 목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권해보고 싶은" 앞에 "(이토록 나를 즐겁게 해준 제작사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하나라도 더 팔렸으면 싶어)"라는 문구를 덧붙여도 좋겠다.

 참, 2015년 11월까지 출시된 타이틀만 대상으로 했다. 주로 외국 타이틀을 사다 보니 12월 출시작은 이듬해에야 손에 넣게 되는 경우가 많다.










11. 10 to Midnight (지역 코드 ABC / Twilight Time)


 열 편으로 끝내도 됐을 이 목록을 굳이 열한 편으로 만든 것은 이 고약한 영화를 언급하기 위해서였다. [데스 위시(Death Wish, 1974)] 이후 범람한 찰스 브론슨 주연의 그저 그런 자경단 영화겠거니 하면서도 표지도 마음에 들고, 제목도 끌리고, 자경단 영화 나름 좋아하는 편이고, 출시를 앞두고 Twilight Time 설립자 닉 레드먼을 초청한 팟캐스트 Killer POV의 진행자들이 멋진 영화라고 난리를 치기에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충동구매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큰 즐거움이 있었다. [자정까지 10분(10 to Midnight, 1983)]은 브론슨의 폭력 경찰 및 자경단 영화 전통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게으르게 스타 이미지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브론슨은 자기 존재를 과시하며 영화 전체를 혼자 끌고 가기보다는 한두 발 뒤로 물러나 다른 캐릭터/배우들이 숨 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노 형사와 젊은 신참의 관계나 노 형사와 딸의 관계도 액션을 위한 배경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제법 흥미진진하게 살아난다.

 무엇보다도 각본과 연출이 브론슨의 액션보다는 진 데이비스가 연기한 살인마의 무자비한 살육에 초점을 맞추어 80년대 난도질 공포 영화가 줄 법한 파렴치한 자극을 제공한다. 매번 의복을 모두 벗어 가지런히 개어둔 다음 발가벗은 채 범행에 나서는 살인마라는 설정이야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발가벗고 다니기 때문에 현장에 증거가 전혀 남지 않는다고???), 연출도 연기도 각본도 모두 진지하여 웃음이 터지는 와중에도 사나움은 줄지 않는다. 건장한 남자가 발가벗고 칼을 든 채 대로를 질주하며 여자를 뒤쫓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현실에 도래하여 충격을 안기자, 그 닳고 닳은 브론슨식 자경단 논리마저 일순 설득력을 얻는 듯했다. 과연 [케이프 피어(Cape Fear, 1962)]를 연출한 감독의 솜씨랄까. 나는 감상자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자극과 쾌락을 안겨 자신의 윤리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 영화들을 좋아한다. '내가 과연 이런 영화를 좋아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고민 또한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지니.





10. Ten Seconds to Hell (지역 코드 A / Kino Lorber)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영화가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Blu-ray로 소개되고 있어 기쁘다. 2015년에 Twilight Time에서 출시한 [북극의 제왕(Emperor of the North, 1973)]은 알드리치 팬으로서나 리 마빈 팬으로서나 기차 영화 팬으로서나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걸작이지만, 출시 소식만으로 나를 경악하게 한 것은 바로 Kino Lorber에서 선보인 [지옥까지 10초(Ten Seconds to Hell, 1959)]였다. 나는 이 영화를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버트 알드리치 회고전"을 통해 필름으로 보았으며, 알드리치 회고전이 다시 열리지 않는 한은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해 왔다. [지옥까지 10초]는 알드리치의 영화 중 유명한 편도 아니고, 잘 알려진 전쟁 영화도 아니고, 이전에 미국에서 DVD로 출시된 적도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Kino Lorber의 누가 이 영화를 발견하여 이토록 훌륭한 화질에다 영어 자막까지 입혀 출시하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베를린으로 돌아온 여섯 명의 폭탄 제거 전문가가 시내에 남은 불발탄을 제거한다. 팀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두 사내는 서로를 싫어하고, 자존심 싸움은 급기야 목숨과 월급을 건 내기로 번진다. 순번을 정해 폭탄을 제거하되 누가 먼저 죽든 살아남는 사람이 돈을 가져간다. 하지만 혼자서 제거할 수 없는 폭탄이라면, 혹은 사고가 생겨 상대가 위기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설정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뛴다. 두 주인공의 대립을 공동체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건축가와 개인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자 간의 윤리 대결로 승화시키고자 한 '문학적'인 시도가 다소 과하기는 하지만, 전후 독일에서 로케이션 촬영으로 담아낸 처참한 풍경이 빚어내는 압도적인 인상과 결과를 알고 보아도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는 폭탄 제거 묘사까지 더해지니 거칠거칠한 극작술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부록은 하나도 없지만, 알드리치 팬으로서는 존재 자체에 그저 고마워할 따름이다.

 2016년에도 Twilight Time에서 [불사조의 비상(The Flight of the Phoenix, 1965)]을 출시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거니와 알드리치 영화는 계속해서 Blu-ray로 나오지 싶은데, 모쪼록 [황혼의 마지막 섬광(Twilight's Last Gleaming, 1977)]처럼 망할 Olive Films로 넘어가지 말고 이렇게 Kino Lorber에서나마 영어 자막 달고 나와주길 기원한다. 그런데 Kino Lorber는 왜 어떤 타이틀에는 자막을 넣고 어떤 타이틀에는 안 넣는 걸까?





9. The House of Mystery (지역 코드 1 / Flicker Alley)


 [팡토마스(Fantômas, 1913-1914)]와 [흡혈귀들(Les vampires, 1915-1916)]의 루이 푀이야드 덕분에 무성영화 시절의 연속극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2015년 Flicker Alley에서는 샌프란시스코 무성영화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등과의 협력을 통해 그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윌리엄 질레트 주연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1916)] 프랑스 개봉용 4부작 연속극판(원래 한 편의 장편 영화이던 것을 넷으로 쪼개 연속극으로 만들어 개봉)을 Blu-ray로 출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유실과 발굴과 복원에 얽힌 감동적인 역사와 홈스라는 캐릭터가 뿜어내는 광채마저도, 러시아 출신의 망명객들이 프랑스에서 만든 10부작 연속극 [수수께끼의 집(La maison du mystère, 1921-1923)] DVD가 안겨준 즐거움에 비하면 약간은 빛이 바래는 듯했다.

 이야기는 친구의 연인을 사랑한 남자의 질투와 증오에서 시작한다. 남자는 친구에게 누명을 씌우고 친구의 연인을 차지하고자 한다. 누명을 쓴 사나이는 세상을 떠돌고, 집에 남은 연인은 시시각각 위협받는다. 이런 설정에다 제목마저 이렇고 보니 거대한 저택에서 펼쳐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닐까 예상하게 되지만, 사실 제목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수수께끼다. 왜 수수께끼의 집인데? 이건 정작 집 밖으로 나가 저택 주변의 폐허에서부터 머나먼 유형지와 깊은 산골짜기, 절벽 위의 별장 등 드넓고 거창한 풍경을 오가며 활극이 될 때 가장 훌륭한 영화잖아! 아하, 그러고 보니 프랑스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나라였지! 비록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는 처음에 예고했던 것만큼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지만, 실루엣만으로 끌고 가는 결혼 장면, 유형지에서 펼쳐지는 기나긴 탈주, 집안을 다 때려 부수는 혈투 등 느닷없이 펼쳐지는 명연출과 스턴트가 즐비하여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설령 명장면이 아니더라도 푀이야드의 1910년대 작품과 달리 한결 능숙하고 세련돼진 영화작법은 (푀이야드의 영화가 지닌 아름다움은 그 투박함에서 비롯했으니만큼 반드시 장점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눈에 기쁨을 가져다주기에는 충분하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Blu-ray가 아니라 DVD로 출시됐다는 점 정도? 소스 문제인지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후자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모쪼록 Flicker Alley가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Человек с киноаппаратом, 1929)]처럼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작품들 외에도 이런 숨은 보석들을 계속 좋은 품질로 소개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8. Hellraiser: The Scarlet Box (지역 코드 B / Arrow Films)


 공포 영화계에 명망 높은 헬레이저 시리즈를 드디어 보았다. [헬레이저(Hellraiser, 1987)]는 의심의 여지 없는 걸작이었고, 속편 [헬바운드: 헬레이저 2(Hellbound: Hellraiser II, 1988)]는 전편 같은 짜임새는 없어도 거꾸로 설정을 감당 못 할 지경으로 확장하며 폭주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헬레이저 3: 지상의 지옥(Hellraiser III: Hell on Earth, 1992)]에 대해서는 시리즈를 망친 망작이라는 원성이 자자했으나, 나는 그마저도 즐겁게 보았다. 물론 실소가 나올 법한 영화이긴 하지만, 실소가 나올 만큼 밀어붙였기 때문에 나온 근사한 장면들도 있었다. [헬레이저 3] 후반부에 나오는 지옥의 수도사들 디자인만 해도 요즘 나오는 웬만한 공포 영화들 다 쌈 싸먹지 않을까?

 하지만 이 순위는 영화 이상으로 Arrow Films를 위한 순위다. 구매를 망설이다가 절판 소식에 부랴부랴 막차를 타서 손에 넣은 Hellraiser: The Scarlet Box는 실로 오랜만에 패키지만으로 눈물을 쏟게 하는 타이틀이었다. 모양만 그럴듯할 뿐 부피가 크고 내구성도 떨어져 실속 없으리라 생각했던 박스는 예상외로 그렇게 크지 않고(일반 Blu-ray 타이틀 규격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튼실하며 타이틀 열람이 편리한 구조였다. 내부에 쌓은 디지팩을 보호하는 한편 디지팩을 꺼내기 쉽도록 박스 양쪽에 완충지대를 만든 것도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아이디어라서, Arrow Films가 수집가들에게서 돈을 갈퀴로 긁어내는 데에만 관심있는 회사가 아니라 실제로 소비자 입장에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제작사임을 짐작케 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그러나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한정판에 동봉된 소책자였다. 아니, 이것을 소책자(booklet)로 불러야 할까? 이건 그냥 책(book)이다. 200쪽짜리 풀컬러 실제본 양장! 필 스톡스와 사라 스톡스가 집필한 이 책은 영화 세 편의 개봉 당시 보도자료와 각 작품의 제작 과정을 담은 기나긴 에세이, [헬레이저]를 만들기 이전 클라이브 바커가 집필 및 연출한 연극과 단편 영화에 관한 논의, 핀헤드 캐릭터 탐구 등을 수록하고 있다. 각 글은 그냥 이렇게 요약했을 때 상상함 직한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관계자 인터뷰와 관련 자료 인용이 듬뿍 첨가된 연구서에 가깝다. 나를 정말 질리게 한 것은 권말의 참고 문헌 목록. 참고 문헌 목록을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나누어 여덟 쪽에 걸쳐 게재하고 있다. 8, 90년대 중저예산 공포 영화 세 편 Blu-ray 박스 세트를 만들면서 부록으로 넣은 책자가 2백 쪽에 참고문헌이 여덟 쪽? 이 정도면 그냥 출판계로 나가서 책을 만들어 파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아직 네 개의 디지팩에 담긴 부록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않았지. 숨차니까 안 하겠다.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4K 스캔하지 않고(못 하고?) 인터포지티브 필름을 2K 스캔해서 만든 본편의 화질에 대해서는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특히 [헬레이저 3]이 필름에 담긴 이미지를 전부 보여주는 바람에 오히려 최종 상영본에서는 잘라낸 영역이 화면에 들어온다는 지적도 있으나(Arrow Films는 작업 과정에서 인지한 부분이며 수정할 계획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팬들의 지적이 옳은 듯하다. 그런데 애초에 왜 이렇게 촬영했을까?), 감상에는 별반 지장이 없었다. 이보다 더 잘 만들지 못했다고 불평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수납장에 꽂아 놓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타이틀을 만든 사람들의 애정이 전해지는걸.





7. The Offence (지역 코드 B / Eureka)


 세상에는 앞서 소개한 [자정까지 십 분] 같은 폭력 경찰 자경단 영화를 위시하여 범죄자를 잡으려다 가늘고 푸른 선을 넘어버리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루멧처럼 그 주제를 특정 캐릭터의 성벽이나 트라우마적인 사건에만 내맡기지 않은 채 세밀하게 탐구하는 감독은 많지 않다. 특히 [가해]는 '이 참혹한 세상에 더러운 놈들 상대하다 보니 나도 성질이 더러워졌어!' 수준이 아니라 경찰관도 범인과 똑같은 참상을 목격하기에 사실상 범인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시선의 문제를 끌어들여 연출의 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놀랍다. 어떤 광경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목격자도 가해자가 된다는 주제야 시선의 윤리 운운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소리지만, 그것을 이렇게 경찰 수사극 안에서 피부에 와 닿게 시청각적으로 옮겨낸 사례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 주제가 원작에는 없는 도입부를 통해 마련된다는 점에서, 실내 공간에 집중하는 연극을 단순히 '통풍' 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주제를 적극적으로 확장해낸 사례라 하겠다. 또한 '연극적'인 대화를 카메라 위치와 공간과 렌즈의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시각적으로 번역해 내는 루멧의 솜씨야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시절부터 유명하지만, 여기서는 거의 모든 대화가 2인 대화다. 소품이랄 것도 많지 않은 방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바꿔가며 대화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 연출자가 자신을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고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실험해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영화!'라고 부르짖는 듯한 역작.

 이 영화는 미국 Kino Lorber에서도 출시한 바 있지만, 물론 연극을 바탕으로 한 영국 영화를 영어 자막도 없이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Eureka를 찬양할진저. 수십 년 전 한 미국 감독의 작품에 참여한 영국 스탭들을 찾아가 따낸 인터뷰는 영국 영어 때문에 다소 알아듣기 힘들지만('오오, 제가 그 위대한 루멧 감독의 영화에 공헌했지요' 하는 기색 하나 없이 다들 뚱하고 잘 기억도 안 난다는 듯 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본편만으로도 이 타이틀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6. Ride the Pink Horse (지역 코드 A / Criterion)


 그래도 의리가 있지 조셉 로지 감독의 [배회자(Prowler, 1951)]는 넣어야 하지 않나 잠시 고민했는데, 결국 이 영화가 있기에 안심하고 뺄 수 있었다. 배우 겸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는 연출 데뷔작 [호수의 여인(Lady in the Lake, 1947)]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을 1인칭 주인공 시점 카메라로 고스란히 옮겨내는 무모한 실험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같은 해에 내놓은 이 두 번째 연출작 [분홍색 말을 타라(Ride the Pink Horse, 1947)]야말로 그가 필름 누아르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싶다.

 원작자는 [고독한 영혼(In a Lonely Place, 1950)]의 원작자이자 미국 여성 하드보일드 작가 3총사 중 한 사람인 도로시 B. 휴즈. 각색은 하워드 혹스와 함께했던 1급 각본가 벤 헥트와 찰스 레더러. 촬영은 더글러스 서크의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All That Heaven Allows, 1956)]과 오슨 웰스의 [악의 손길(Touch of Evil, 1958)]을 촬영한 러셀 메티.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동지들의 도움 속에서, 몽고메리는 그간 미국인들의 도피처 혹은 미국보다 열등하거나 더 야만적인 거울상으로 소비되곤 했던 중미 스페인어권 세계가 멍청한 미국인 터프가이를 서서히 집어삼키면서 서사적 주체성을 빼앗아 가는 일종의 안티 필름 누아르를 만들어냈다. 허우대만 멀쩡하지 맹탕 같은 몽고메리의 이미지도 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며, 입이 딱 벌어지는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부터 악당 두목의 보청기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하게 넘어가는 구석이 없는 작은 보석 같은 영화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를 상대로는 절대로 이 정도면 웬만큼 봤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Criterion에서 출시한 Blu-ray의 구성은 단출한 편이지만, 알랜 실버와 제임스 어시니의 본편 음성해설을 다 듣기 버겁다면 필름 누아르와 공간에 관한 저서를 썼다는 이모젠 사라 스미스의 인터뷰만이라도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짧지만 기대 이상으로 실속있는 인터뷰다.





5. La corta notte delle bambole di vetro (지역 코드 B / Camera Obscura)


 코드 B 입문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Camera Obscura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DVD 시절부터 유명했던 독일의 홈비디오 타이틀 제작사지만, 나는 코드 B에 마음을 열게 된 2015년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 Blu-ray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인 듯한데, 6, 70년대 이탈리아 장르 영화, 특히 공포 및 범죄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 검색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출시작 수나 판매 정책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영세한 소규모 업체일 것 같은데 타이틀에 들이는 공이 어마어마하다. DVD 시절부터 화질과 음질 좋고 부록 실속 있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그 명성은 Blu-ray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하다.

 하지만 Camera Obscura의 정말 놀라운 점은 그 어마어마한 영어 접근성이다. 이 회사는 이미 DVD 시절부터 본편 영어 자막은 물론이고 본편 음성해설과 기타 부가 영상에도 늘 영어 자막을 제공해 왔다. 디스크를 넣으면 메뉴부터 독일어와 영어 중 선택하라고 뜬다. 심지어 소책자에 실린 에세이도 독일어와 영어로 두 번 수록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정도로 철저하게 영어 사용자를 배려하는 타이틀은 블루키노에서 제작한 한국영상자료원 DVD 및 Blu-ray 외에는 본 적이 없다. 그나마 한국영상자료원은 공공기관으로서 자국 영화를 다루기라도 하지, Camera Obscura는 이탈리아 영화를 다루는 독일 업체란 말이다. 독일인들이 70년대 이탈리아 영화를 어제 만든 것처럼 복원해서 독일어 음성해설을 두 개나 넣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음성해설 둘 모두에 영어 자막이 달려 있을 때의 그 초현실적인 감동이란.

 [유리 인형들의 짧은 밤(La corta notte delle bambole di vetro, 1971)]은 이런 제작사의 존재에 감동해서 시험 삼아 주문한 타이틀이었는데, 영화 자체도 기대 이상으로 빼어났다.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의 전성기에 나온 딱 지알로스러운 제목을 지닌 영화라 당연히 흔한 지알로를 예상하게 되지만, 실상은 몹시 진중하게 전개되는 심리 공포 영화에 가깝다. 모든 생체 기능이 정지한 채 의학적 사망 상태로 발견된, 그러나 의식은 유지하고 있고 사후강직도 일어나지 않는 한 사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어쩌다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됐는지를 추적한다는 설정부터가 더없이 흥미롭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이런 제목을 지닌 70년대 이탈리아 장르 영화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제된─그러나 시청각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스타일과 허튼 웃음 없이 진지한 캐릭터들, 설명이 필요 없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따라가다가 이야기를 좇다 보면 설마했던 결말에 이르러 절로 혀를 빼물고 중얼거리게 된다. Danke schön, Camera Obscura!





4. Edgar Allen Poe's Black Cats (지역 코드 AB / Arrow Films)


 냉정히 말해 여기 수록된 두 편의 영화 [너의 악덕은 잠긴 방이며 그 열쇠는 나만이 갖고 있다(Il tuo vizio è una stanza chiusa e solo io ne ho la chiave, 1972)]와 [검은 고양이(Gatto nero, 1981)]는 영화 자체로만 따지면 [유리 인형들의 짧은 밤]보다 더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를 지알로의 세계로 이끈 공로를 생각하면 이 박스 세트를 한 계단 높은 곳에 모셔야겠다. 물론 이전에도 지알로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고, [워드 부인의 기묘한 악덕(Lo strano vizio della signora Wardh, 1971)]이나 [타란툴라의 검은 배(La tarantola dal ventre nero, 1971)] 같은 작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내 관심은 주로 마리오 바바와 다리오 아르젠토라는 두 감독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었다. 그것을 70년대 초중반 이탈리아 영화계를 휩쓴 지알로 유행 전체로 확장해 준 데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모티프로 삼은 이 두 편의 영화와, Arrow Films에서 마련한 부록의 영향이 지대했다. (정작 이 두 편이 그렇게 전형적인 지알로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일단 두 영화 중에서는 제목만 봐도 궁금증을 떨칠 수 없으며 아름다운 두 배우 아니타 스트린드버그와 에드위지 페넥이 마성을 발휘하는 [너의 악덕은 잠긴 방이며 그 열쇠는 나만이 갖고 있다]보다 [검은 고양이]가 더 흥미진진했다는 점이 의외였다. 물론 둘 다 재미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말이 안 되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말이 되고 머리를 쓰는 미스터리를 구축하고자 한 전자보다도 아예 작정하고 비논리로 빠져드는 후자가 더 이탈리아 장르 영화의 기괴한 매력을 한층 진하게 흩뿌린다. [검은 고양이]의 감독 루치오 풀치는 이탈리아 공포 영화계의 대표 감독 중에서도 특히 엉성한 서사와 고약한 신체 훼손 묘사로 악명이 자자하다기에 썩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고어 효과가 적다는 이유에서 팬들에게는 그렇게 인기 있는 작품은 아닌 듯한) [검은 고양이]를 보고 나니 그저 신체 훼손 묘사만 과격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연출력이 있는 감독이며 엉성하다는 서사도 단순히 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악몽에 가까운 어떤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좀비 2(Zombi 2, 1979)] 같은 영화는 좀 더 이후에 손대게 될 테지만, [여자의 피부를 한 도마뱀(Una Lucertola con la pelle di donna, 1971)] 같은 작품은 당장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박스 세트의 진정한 매력은 부가 영상에 있다. 두 작품의 감독 및 배우 인터뷰에다 전문가들이 만든 다큐멘터리까지 보고 나면 특정 영화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지알로라는 세계 전체를 일별하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너의 악덕은 잠긴 방이며 그 열쇠는 나만이 갖고 있다]에 수록된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의 경력에 관한 영상 에세이와 배우 에드위지 페넥에 관한 논의를 듣고 있으면 심지어 지알로를 벗어나 이탈리아 장르 영화 전반에 대한 없던 애정마저 생겨날 정도다. 아직 생존해 있으며 불과 몇 년 전에도 TV 영화를 만든 바 있는 현역 감독 마르티노의 인터뷰에 이르러서는 거의 무릎을 꿇고 싶어진다. 2015년 기준으로 일흔일곱 살인 노감독이 40년도 전에 만들었던 자기 영화에 관해 너무나도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평가하는 모습이 어찌나 존경스러운지. 그 태도에서 '나는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며 사는 늙은이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다' 라는 자연스러운 확신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게 한마디도 중언부언하는 일 없이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소상하게 들려준 이 노대가가 인터뷰 말미에 이르러 "어, Arrow Films에서 이 인터뷰를 하면 나에게 사례비를 주겠다고 했는데요, 나는 지금도 풍족하게 잘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돈은 어디 어디에 기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까지 보고 나면 눈물을 쏟으며 충성을 맹세하고 싶어진다. 2015년 최고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3. Julien Duvivier in the Thirties (지역 코드 1 / Criterion)


 2015년은 프랑스 영화에 대한 내 이해가 구멍투성이임을 새삼 확인한 해이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에 관한 나의 지도를 돌아보면, 초기에는 뤼미에르 형제와 조르주 멜리에스가 있었고, 1910년대에는 루이 푀이야드와 연속극이 있었지만, 1920년대 프랑스 무성영화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고, 3, 40년대는 장 르누아르를 제외하면 거의 비어 있는 듯하며, 40년대 중후반 즈음에야 로베르 브레송이나 자크 타티나 막스 오퓔스나 장-피에르 멜빌 같은 이름이 등장하고, 그런 다음 저 유명한 누벨바그 세대로 넘어갔다가, 그 뒤로는 흐름조차 잡지 못한 채 모리스 피알라나 클로드 소테나 파트리스 르콩트 같은 이름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상태다. 거의 감독의 이름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분포도 초기영화와 5, 60년대에만 집중돼 있다. 물론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물론이고 독일로만 넘어가도 지도는 더욱 빈약해지지만, 그렇더라도 영화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나라, 그리고 영화를 예술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수많은 논의를 낳은 나라의 영화 지도가 이렇게까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영화의 2-40년대는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바로 이 시기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의 패권을 거머쥐고 고전적인 양식을 완성하며 스튜디오 시스템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때 '영화의 종주국'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보았을까? 지금 영화학도들에게 위대한 감독으로 추앙받는 거장의 작품이 아니라, 그 당시 프랑스 대중이 즐겨 찾았던 영화는 어떤 영화들이었을까? 한편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나치 점령기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저 유명한 격문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 이 시기의 역사를 묻어버리고 있는 듯했다. 특히 평론가 트뤼포의 도발적인 주장이 남긴 폐해는 심각해서, 한때 나 역시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30년대 시적 리얼리즘을 위시한 이 시기 프랑스의 "대중" 영화는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바다. 정작 트뤼포 자신은 늘 그렇게 확고했던 것도, 특정 시대의 모든 감독을 무차별로 비난했던 것도 아니건만.

 다행히 몇 해 전 Criterion에서 Eclipse 시리즈로 출시한 나치 점령기 장 그레미용 감독의 영화들이 이 헛된 고정관념을 한 번 흔들어 주었고, 그 여파를 다시 2015년에 나온 쥘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30년대 영화 네 편이 이어갔다. 여전히 감독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묵직한 작가의 이름이 요구하는 숭배 의식에서 벗어나 프랑스 영화를 내 눈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됐다는 건 상당히 큰 변화다.

 여기 수록된 네 편의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에 영화 경력을 시작한 뒤비비에가 발성영화의 시대에 들어와 소리의 가능성을 적극 탐구한 연출자이며, 공간을 '눈에 보이지 않게' 나누는 데에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던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양식과는 다른 공간 구축 및 인지 방식을 갖추고 있었고, '눈에 보이는' 카메라 움직임과 특수효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명랑한 실험가였음을 알려준다. 중년의 사업가가 아내와 딸에게 철저히 뜯어먹힌 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을 담아낸 첫 발성영화 [다비드 골데르(David Golder, 1931)]부터, 터무니없이 밝고 명랑한 소년이 모든 가족에게 부당하게 무시당하거나 미움받으면서 점점 자살을 향해 이끌리는 가혹한 성장담 [홍당무(Poil de carotte, 1932)], 조르주 심농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자기보다 풍족한 사람들을 향한 이민자의 처절한 증오를 바깥 세상의 끔찍한 소음과 접붙이는 범죄 영화 [타인의 목(La tête d'un homme, 1933)], 남편을 잃은 여인이 어린 시절 자신을 쫓아다녔던 남자들을 찾아가 꿈 같았던 과거의 쇠락을 확인하는 과정을 코미디에서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톤과 장르로 펼쳐낸 [무도회 수첩(Un carnet de bal, 1937)]에 이르기까지, 정서를 보든 스타일을 보든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영화가 없다. "멜랑콜리"나 "비탄" 같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참한 감정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이나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황량한 실내와 병치시켜 한껏 북돋는 대담한 솜씨를 직접 확인하고 나면 시나리오에만 의존할 뿐 작자의 개성은 찾아볼 길 없는 '양질의 전통'에 있는 영화라는 게으르고 부당한 비난을 더는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다. (참고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트뤼포는 뒤비비에의 어떤 영화는 혹평했지만 적지 않은 영화를 옹호하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Eclipse 시리즈임을 고려하더라도 유독 필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 유일한 약점인데, 그래도 시네마테크에서 낡은 필름을 보는 데에 익숙해진 감상자라면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영화가 이 정도라면 불평할 수는 없다. 언젠가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라며, 일단은 또 다른 3, 40년대 프랑스와의 만남을 준비해 봐야지. 다행히 Pathé 같은 프랑스 제작사에서도 알음알음 자국의 옛 영화들을 복원하여 영어 자막을 넣은 Blu-ray로 출시해주고 있는 만큼 조금씩 무지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Breaking Away (지역 코드 ABC / Twilight Time)


 [블리트(Bullitt, 1968)]와 [에디 코일의 친구들(The Friends of Eddie Coyle, 1973)]이라는 6, 70년대 하드보일드 범죄 영화의 걸작을 만들고 후대의 자동차 추격 장면을 영원히 바꿔놓은 피터 예이츠 감독이, 그 두 영화보다 더 원숙하고 아름다운 청춘 영화를 만들었다니? 이 무슨 조지 A. 로메로가 좀비 영화로 일세를 풍미한 다음 다시 [나이트라이더스(Knightriders, 1981)] 만든 것 같은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정말이지 질주의 쾌감 정도는 있겠거니 하며 샀던 이 영화가 (역시 2015년에 극장에서 처음 만난)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1988)]만큼이나 다정하고 사려 깊고 생의 활력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일 줄은 몰랐다. 여기에는 십대의 방황을 다룬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필요한 거들먹거림이나 남성성에 대한 강조는 없다. 아이들은 모두 나름으로 진실하고 현명하다. 코미디는 웃기려고 웃기기보다는 캐릭터의 성격을 존중하며 우러나오기에 더욱 커다란 폭소를 끌어낸다. 촬영감독 매튜 F. 레오네티가 잡아낸 한적한 대학 도시의 풍경은, 음성해설을 녹음한 줄리 키어고의 말처럼 "미국의 에덴" 같다. 그리고 물론,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계주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질주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면에서 밝고 건강하면서도 거짓말하지 않는 걸작이다.

 음성해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한때 Twilight Time을 두고 본편에 영어 자막도 안 넣어주고 3천 장 한정판에 할인 없이 비싼 값에 판다며 Olive Films만큼이나 못된 회사라고 불평하곤 했는데, 늦게나마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지난 3년여 동안 Twilight Time이 내 소장 목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갔고, 덕분에 내가 좋아하지만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내줄 만큼 시장성이 있지는 않아 묻힐 뻔한 작품들과 내가 몰랐지만 정말로 좋아하게 된 작품들을 꾸준히 접할 수 있었다. 특히 2015년에는 다른 사람들의 영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영어 음성해설을 틈틈이 듣게 되었는데, 음성해설에 대한 Twilight Time의 정책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이 회사는 음성해설을 녹음할 때 설립자 닉 레드먼과 줄리 키어고, 렘 돕스 등의 고정 멤버를 꾸준히 기용한다. 음성해설을 여럿 듣다 보면 각각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히 이 고정 멤버들과 친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국식 씨네필의 고답적이고 배타적인 태도 없이,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을 찬미할 줄 아는 눈을 간직한 채, 자신이 발견한 기쁨을 두 시간 동안 나누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경험. 그것이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1. Fat City (지역 코드 ABC / Twilight Time)


 이 영화를 본 이후 단 한 순간도 2015년의 1위 자리에 어느 타이틀을 올릴 것인가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브레이킹 어웨이(Breaking Away, 1979)] 보고 나서 2초 정도 고민했던가? 하지만 피터 예이츠 감독도 이 선정에는 불만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는 수년 전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았지만, 그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권투 영화라기에 보러 갔는데 권투를 제대로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 그냥 멍하니 보다 나왔던 기억만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느닷없는 결말 앞에는 당혹감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이것이 권투 영화에서 기대함 직한 모든 것을 가져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숭고해지는 영화라는 사실을. 퇴물 권투 선수와 젊은 유망주가 만난다는 기본 설정에서 예상하게 되는 그 어떤 것도 이 영화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기름진 도시(Fat City, 1972)]가 그려내는 세계는 링 위의 승패가 인생을 가르는 스포츠의 세계가 아니다. 이곳은 생의 초반부에 이미 자신의 무력함을 체감했고, 어떤 큰 포부도 없이 다만 하루살이처럼 보잘것없는 소망과 충동에 이끌리며 살아가는, 그리고 그마저도 번번이 좌절로 이어지는 데에 익숙해진 필부들의 세상이다. 그런데 꿈과 희망과 성공 같은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그 누구도 '언젠가는 잘될 거야' 같은 혼잣말조차 읊조리지 않는 그 세상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인간의 예의와 긍지를 잃지 않고 있다. 실패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거나, 과도한 자기 연민에 빠져 칭얼거리거나, 무고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자포자기하여 망가지지 않는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자의식조차 없이 다만 그때그때 맞다 싶은 방식대로 꾸준히 무언가를 다시 시도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는데, 그것만으로도 존경할 만한 인간이 된다. 이것은 항상 자기 증명을 위해 몸부림치는 록키 발보아나 제이크 드 라모타는 체득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존 휴스턴 감독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고유의 스타일이 없다는 이유로 작가주의 숭배자들에게 아직도 무시당하곤 한다. 누벨바그식 선동에 맛 들린 사람들은 종종 휴스턴 같은 이의 최고작보다도 하워드 혹스의 졸작이 더 흥미롭다는 유의 말을 함부로 내뱉기까지 한다. 자, 나는 혹스 팬으로서 혹스가 1970년에도 여전히 [리오 로보(Rio Lobo, 1970)]처럼 고전적인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튀어나온 듯한 영화를 만들면서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몹시 뭉클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 1941)]를 시작으로 고전적인 스튜디오 스타 시스템에 의지하는 걸작을 내놓았던 휴스턴이 70년대에 이르러 할 애쉬비나 밥 라펠슨 같은 동시대 젊은이들이 만든 뉴 할리우드 영화가 지닌 정서를 고스란히 체득한 후 더없이 젊고도 원숙한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사실 역시 굉장하지 않나? 여기서 그가 스테이시 키치, 수잔 타이렐, 제프 브리지스 및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세계의 사실성을 포착해 내는 솜씨을 보고 있노라면 존 카사베티스의 영화조차 지나치게 자의식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휴스턴은 사실주의를 위한 사실주의에 빠져 사실적인 세계의 사실적인 더러움, 사실적인 고통을 전시하는 데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기름진 도시]를 보고 나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정신적 고양감에 휩싸인다. 이 영화는 추하고 괴로운 현실을 응시하여 그 안에 매몰되기에 십상인 반짝이는 영혼을 끌어올린다. 이것은 '우리 같은 대중'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던 세계에서 영화를 시작한 감독이 '나 같은 개인'에 함몰되곤 하는 현대 영화에 남겨준 가장 귀한 선물 중 하나다.

 아, 하나만 더. 촬영감독 콘라드 홀은 위대하다. 오스카 촬영상도 세 개나 받으신 분인데 무슨 새삼스러운 소릴 하나 싶지만, 2015년에 [기름진 도시]와 더불어 Twilight Time에서 출시한 [검은 과부(Black Widow, 1987)]까지 보고 뼈에 사무치게 느꼈다. 무슨 화려함을 대놓고 어필하는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도 아니거늘, 원래 이 영화들을 좋아했던 사람도 Blu-ray로 다시 보고 나면 별을 한 개쯤 더 얹어주고 싶을 것이다. 콘라드 홀은. 위대하다.
신고
Posted by Dr. Gogol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