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조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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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해보고 싶은 2015년 출시 DVD/Blu-ray 열한 편"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했더랬다.

 또한 2015년은 정말 미친 듯이 타이틀을 구매한 해였다. 이건 어느 정도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2016년에 내 생활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을 예정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홈비디오 타이틀 구매 자체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월동 준비하는 다람쥐가 된 기분으로 좀 무리해서 마구 사들인 감도 없지 않았다. 설령 앞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타이틀을 구매할 수 있다 해도, 2015년의 소비 패턴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꽤 확실해 보인다. 고작 2년째에 김 빠지는 소리지만, 어쩌면 이렇게 즐겁게 이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당분간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부디 그렇지는 않기를 바란다.

 "2015년의 소비 패턴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꽤 확실해 보인다." 실로 돗자리를 펴도 좋을 만한 선견지명이었다.

 2016년은 2015년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광란의 해였다. 홈비디오 타이틀을 사 모으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타이틀을 손에 넣은 해였을지도 모른다. 설령 가장 많은 타이틀을 손에 넣은 해는 아니었을지라도(타이틀을 손에 넣을 때마다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홈비디오 타이틀 구매에 가장 많은 돈을 쓴 해였으리라는 점은 확신한다. 한창 DVD에 집중하던 시절에는 타이틀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고, 적지 않은 미국 타이틀을 한국 중고 시장에서 샀으니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먼저 2015년의 구매 패턴이 낳은 관성. 몇 달을 미친 듯이 타이틀을 사다 보니 어느덧 그런 소비 방식이 자연스러워져서 멈추기 어려웠다. 그리고 2016년에 바뀐 생활 방식이 상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았다. 지출이 줄어든 분야도 꽤 있었고, 예상 밖의 수입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 때문에 경계심이 느슨해져 구매에 거침이 없었다. 빚을 낸 것도 아니고, 그런 지출 때문에 생활이 팍팍해진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은 부끄럽다. 총 몇 개를 입수했는지 알기 때문에 더 부끄럽고, 이번 한 번만 그 부끄러움을 박제하는 의미에서 2016년에 손에 넣은 타이틀을 전부 한자리에 모아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도 했으나 스무 개쯤 꺼낸 다음 그것만으로도 한나절 노동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포기했다. 365개는 아니었다고만 해두자.

 2017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예언한다. 2017년에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타이틀을 구매할 수 있겠지만, 2016년의 소비 패턴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꽤 확실해 보인다. 이미 한 번 전망이 빗나갔음에도 이렇게 자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16년을 시작할 때는 앞으로의 생활이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수입은 얼마나 되고 지출은 얼마나 될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계산이 섰으며, 모아둔 돈도 많이 줄었다. 지금으로서는 떠올릴 수 없는 어떤 거액의 수입처가 생기지 않는 한은, 손에 넣는 타이틀의 수가 2016년의 1/3 이하로 줄어드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

 따라서 2017년에는 무엇보다도 영화 선택의 보수화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들 '이건 사야해!'라고 외치는 타이틀, 유명한 '작가'의 이름난 '걸작', 이미 보아서 잘 아는 영화들로만 점철된 구매 목록을 만들지 않기 위한 채찍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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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비디오 물리 매체 업계로서도 2016년은 광란의 해였다. 2015년에도 말했듯 이 시장이 일종의 사양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닉 레드먼은 Twilight Time이라는 업체명을 물리 매체의 "황혼기"에 사업을 시작한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다만 그 사양기가 시장의 침체나 괴멸이라기보다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물리 매체 시장에서 조금씩 발을 떼는 가운데 메이저 스튜디오의 카탈로그 타이틀을 손에 넣은 독립 제작사들이 소수(상대적으로)의 수집가를 겨냥한 양질의 패키지를 출시하는 형태로 찾아오면서 개별 수집가들에게는 뭐 이런 고통스러운 천국이 다 있나 싶을 지경으로 눈 돌아가는 타이틀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물리 매체 제작사 웹사이트나 물리 매체를 다루는 영어권 포럼 및 리뷰 웹사이트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 365개는 아니지만 수많은 타이틀을 산 인간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췄는데도 '이 타이틀만은 꼭 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던 타이틀조차 다 손에 넣지 못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까. 리뷰 전문 웹사이트 DVD Beaver는 방문객들의 메일을 집계해 2016년 인기 타이틀 1백 개를 공개했다(Blu-ray and DVD of the Year 2016). 목록을 대강 훑어보면 짐작하겠지만 이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연말 베스트 목록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타이틀로 채우는 사람들은 아니며, 21세기 영화보다는 20세기 영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이런 목록에서, 아무리 DVD와 Blu-ray를 합산한 순위라고는 해도, Arrow Films에서 출시한 The Rainer Werner Fassbinder Collection이 1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이미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거장'이며, Arrow Films는 그의 영화 열두 편을 한꺼번에 소개했다. Blu-ray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 DVD 시절부터 제대로 보기 어려웠던 작품도 여럿이다. 나도 이 타이틀을 갖고 있고 감상했는데, 박스 디자인, 화질, 음질, 부가 영상, 책자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명품이다. 그런데 이런 타이틀이 한두 명도 아니고 총 여든여섯 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0위도 아니고 100위에도 못 들었다. 지금 물리 매체 시장은 그 정도 명품이 나와도 연말 결산에서 언급되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얘기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이런 시장을 두고 연말 결산 목록에 왜 이런 게 없느냐 운운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뛰어난 감식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과문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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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시장에서 타이틀을 무지막지하게 사들였으니 결산이 어려울 수밖에. 그래도 처음에는 언제나처럼 열 개를 고르기로 했다. 여차하면 2015년 목록처럼 한두 개 더 고르지 뭐. 하지만 고르다 보니 손에 넣은 타이틀 수가 늘었는데 연말 정산은 똑같이 하면 그 또한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기준을 바꾸고 수를 야금야금 늘려 열여섯 개로 골랐다. 물론 거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2015년 목록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각별했던 타이틀 외에 '사기도 전부터 좋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재미 없어서 안 넣은 타이틀'도 조금 나열하기로 했다. 가령 [인간의 조건(人間の條件, 1959-1961)] Blu-ray 같은 거, 나야 DVD로도 보고 극장에서 필름으로도 봐서 훌륭한 거 다 알고 있으니 새삼 Blu-ray가 나왔다고 열광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명색이 "권해보고 싶은"인데. 말 없이 캡처 한 장만 달랑 올리면 아쉬운 탓에 이번에는 글도 좀 쓰기로 하고 말이지. 그래서 그런 타이틀을 셈하기 시작했는데, 젠장, 그쪽 목록도 어느새 20개를 가볍게 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구체적으로 언급할 타이틀만 40개가 넘게 생겼지. 게다가 '사기도 전부터 좋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재미 없어서 안 넣은 타이틀'을 나열하고 있자니 똑같이 훌륭할 게 뻔한데 그저 내가 아직 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간택되지 못할 타이틀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럼 더 보고 전부 다 언급해야 하나? 하지만 혼자서 50개가 넘는 타이틀을 캡처하고 이야기하자니 결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방만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런 미친 시장에서 어떻게 언급할 만한 타이틀을 다 언급하겠나. 이럴수록 오직 철저하게 사감(私感)에 집중한 목록만이 의미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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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록으로 들어가기 전에 영화 애호가로서 겪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2015년과 2016년은 주변의 영화 친구들이 조금씩 영화와 멀어지거나 홈비디오 타이틀 수집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울한(나에게) 시기이기도 했다. 한때 스크린 앞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보았던 친구들이 하나씩 제 갈 길을 가고, 관심사가 변화하고 생존에 시달리면서 영화를 전만큼 보지 못하게 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이어 가던 타이틀 수집을 재고하고 축소하고 그간의 수집품을 정리하기도 했다. 지리적인 거리가 멀어진 것 역시 결속력을 약화하는 데에 한몫해서, 나 역시 DVD나 Blu-ray를 통해 영화를 모으고/본다는 행위를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유대감은 전에 없이 희박해졌다. 이 타이틀을 손에 넣었으니 함께 보고 싶다거나, 영어 자막으로 같이 보자고 하면 힘들어할 테니 한국어 자막을 만들어 상영해야겠다는 욕망도 꺾이고 있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즉시 실천하기 어려우니 매번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그런 와중에 감상하는 영화 대다수가 동시대 극장 개봉작도 아니고, 한국에서 (적어도 정식 루트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도 아니니 웹에서 입을 연들 '나눈다'는 기분을 느끼기는 어렵다. 아예 무의미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답장이 약속되지 않은 편지를 써서 바다에 던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종종 한국인들이 제작하는 영화 관련 영상이나 팟캐스트도 보고 듣는데, '옛날 영화' 이야기를 좀 더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옛날 영화 이야기를 하면 별로 호응이 없다'고 답하는 경우도 몇 차례 보았다. 그나저나 그때 그 '옛날 영화'는 대강 언제적 영화를 말하는 것일까?)

 보고 싶은 영화, 본 영화를 타인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며, 장기적으로는 영화 보는 사람을 망치는 일이기도 하다. 메아리 없는 열정은 엇나가거나 제풀에 사그라지기에 십상이다. 특히 나는 영화를 '함께 보는 것'으로 인지하면서부터 좋아하게 되었기에 그것이 유난히 힘들었다. 그래서 아등바등 이를 타개하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물리 매체 수집가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본 영화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영어권 웹사이트와 팟캐스트를 기웃거렸고, 내가 찾아 링크하는 리뷰들을 좀 더 열심히 읽었고, 포럼에 한두 마디 말을 보태거나 홈비디오 타이틀 제작사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그간 등한시했던 DVD와 Blu-ray의 부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전까지 DVD, Blu-ray가 어떠어떠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전달체에 불과했다면(감상의 공유야 아는 사람들끼리 하면 되니까), 이제는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담은 DVD와 Blu-ray를 소개하고 판매하고 감상하고 소비하는 시선과 담론 자체도 소중해졌다. 의식하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 해 동안 처음 만난 각별했던 영화 돌아보기를 중단하고 대신 "권해보고 싶은" DVD와 Blu-ray를 선정하게 된 것도 그런 변화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의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때, 나는 종종 "Blu-ray 그거 뭐 보려고 사나!" 운운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상품을 사는 것만으로도 특정 가치나 생산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겠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피에르 바야르가 말한 것처럼, 비감상, 불완전한 감상도 하나의 감상이며 그것만으로도 담론을 생성할 수 있음도 안다. 하지만 직접 대면하기도 전에 이름값에 휘말려 숭배 의식을 드러내고, 더 이름난 타인의 목소리를 베껴와 그 말에 동의하므로 곧 그것은 자신의 취향이요 의견이면 윤리라고 생각하고,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찾아 보신하듯 인기 이슈를 쫓아 다니면서 언제나 올바르고 환영받는 자리에 머무르는 데에 만족하기란 얼마나 쉬운지. '사놓기만 하고 안 봤다'를 당연한 농담처럼 되풀이하며 거기에 심지어 자본주의적 실천이라는 자부심을 부여하고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생각과 말로 주변을 둘러싸는 사이에 자신은 급속도로 비어간다. 수집벽에서 물러난 한 친구는 타이틀을 사놓고 잘 보지도 않으면서 무엇무엇을 사서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려 드는 듯한 태도에 회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 태도가 결국 영화에 대한 애정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음을 안다. 그렇게 보기 드문 일도 아니고, 나와 완전히 무관한 일도 아니다. 지난 1~2년 사이 영화 애호가로서 나는 꾸준히 지적 허영과 거리를 두고자 했으며,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강했다. 더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고, 당장은 이 애호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더 열심히 영화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고 꾸준하게 언어화해야 할 것이다.

 새해 소원 빌듯 두 가지 희망사항을 적어본다. 한국어 자막과 21세기 영화에만 매달리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가 중요해서 물리 매체를 사고 보는 사람들이 감상을 교환할 수 있는 웹 공동체가 존재하면 좋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에 잠겨도 금세 비관적인 전망이 찾아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어로 편안하게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어 한국이라는 문화적 제약 밖으로 나가고 싶다. (종종 시도하고 있으나 꾸준하지는 못하다. 아직은 생각의 속도와 영어를 다루는 속도 사이의 격차가 심하여 생각의 언어화라기보다는 영작 공부로 끝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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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에 나열한 타이틀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1월 사이에 출시된 타이틀 중 내가 손에 넣고 감상한 타이틀 가운데에서 가려 뽑았다.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사는 수집가로서는 12월에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새로 출시된 타이틀을 해가 끝나기 전에 수령하여 감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꼭 목록을 한 해 동안 출시된 타이틀로 한정해야 하느냐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지금 기준대로라면 사두었으나 보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에 처음 감명깊게 본 타이틀을 넣지 못해 아쉽고, 또 2016년에 출시됐고 관심은 있지만 아직 사지 못한 훌륭한 타이틀을 2017년 목록에도 넣지 못할 터라 아쉽다. 하지만 이런 목록이란 본디 게임 같은 것이라 어느 정도 게임의 규칙은 필요했다. 2017년에 타이틀 입수량이 줄어들면 기준을 바꿀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일단 2016년까지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순위 역시 게임의 일부다. 재미삼아 정했을 뿐 큰 의미는 없다. 실제로 수일에 걸쳐 아래 목록을 작성하는 동안 몇몇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그때마다 순위를 바꾸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4위가 1위가 되지 못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6위와 11위의 자리를 바꿔도 문제는 없지 않은가? 14위는 너무 낮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가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처음 정했던 순위대로 올렸다.

 제목에서 "추천하는"이나 "권하는"이 아니라 "권해보고 싶은"이라는 소극적인 표현을 선택한 것은 뉘앙스의 차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본디 영화 추천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소개를 좋아할 뿐이다. 추천이라는 말에는 현재 타인의 기호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소개는 타인의 경험을 확장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고 있다. 소개에는 상대가 당장 열광할 만한 영화뿐만 아니라 상대의 영화 지도 가장자리를 교란하고, 위협하고, 혼란에 빠뜨리고, 싸움을 걸 만한 영화도 포함된다. 물론 더 어려운 일이고, "내 취향은 아냐"의 시대에서는 많이들 좋아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권해보고 싶은"은 그런 두려움도 포함된 표현이다. 아래 타이틀들을 권해보고 싶다. 권할 수 있으면 좋겠다.





17. Blood Simple (지역 코드 A / Criterion)


 기껏 두려움이 포함된 소개 운운해놓고 코엔 형제 영화라니. 하지만 내 주변에는 코엔 형제의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도 코엔 형제의 영화에 열광하는 편은 아니고. 물론 코엔 형제가 영상과 음향의 접합에 능숙한 연출자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쇼트-상대 쇼트의 촬영과 편집이 우울할 정도로 앙상한 동시대 인기작들을 보다가 코엔 형제 영화 속 대화/대치 장면들의 리듬을 맛보면 그들의 영화가 무슨 소재를 다루고 어떤 사상을 담든 무조건 '더 나은 영화'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참조 : "Joel & Ethan Coen - Shot | Reverse Shot"). 반면 코엔 형제의 그로테스크한 시각적 유머가 카메라-감상자에게 과도한 우월감을 허락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세상은 개인이 다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서사와 결합할 때면 너무 낄낄거리기만 한다는 생각도 든다. [파고(Fargo, 1996)]나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 같은 영화들이 좀 더 '진지'하다는 이유로 세상의 이치를 설파하는 것처럼 평가 받을 때면 머리를 긁적이기도 한다. 코엔 형제의 영화는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고 세련된 탓에 관객 쪽에서 잘난 척하기 쉬우며, 그래서 의심스럽다.

 [블러드 심플]도 여전히 '코엔 형제 영화'지만, 이 데뷔작은 약간 다르다. 데뷔하는 사람 특유의 넘치는 의욕과 그 의욕에 제동을 거는 경험적, 물질적 한계 때문일까? [블러드 심플]에는 이후의 코엔 형제 영화에서 만나기 어려운 진지함이 가득하며 징그러울 정도의 자신감은 한결 덜하다. 매순간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지나치게 애쓰는 풋내기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약간 덜컹거리거나 실력을 뽐내려 드는 듯한 순간도 농익지 않은 열정의 흔적이라 어여쁘다. 어쩌면 그건 이 영화가 코엔 형제뿐만 아니라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첫 영화이자 작곡가 카터 버웰의 첫 영화이자 촬영감독 배리 소넨필드의 첫 극장용 장편 영화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블러드 심플]은 '작가' 코엔 형제의 영화이기 이전에 새로운 분야에 막 뛰어든 재능 있는 초보들이 함께 첫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열심히 뛰논 기록이다. 한편 이 영화가 계통상으로 80, 90년대의 네오 누아르 흐름에 속한다는 점도 내게는 매력 포인트다. 코엔 형제는 이후에도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 1990)]이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 2001)]와 같은 훌륭한 필름 누아르들을 만들었지만, 그 영화들이 완연한 '코엔 형제 영화'인 것과 달리 [블러드 심플]은 [육체의 열기(Body Heat, 1981)],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81)], [검은 과부(Black Widow, 1987)] 등이 나왔던 시대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잔소리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도입부와 단출한 규모는 B 필름 누아르의 걸작 같은 향취를 내뿜고, 캐릭터의 동선을 엇갈리게 하여 아무도 전체상을 파악할 수 없는 미로를 만드는 솜씨는 이미 달인의 경지다. 느닷없는 폭력에도 능하지만, 폭력의 가능성만 바탕에 깐 채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의 호흡이나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침묵에 의지해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을 선사한다. 이 정도로 작고 밀도 있는 네오 누아르는 많지 않으리라.

 Criterion이 선보인 새 4K 복원판은 [블러드 심플]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특히 이번에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밝음과 어두움 외에도 이렇게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빛났던가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가득 담은 부가 영상도 풍성한데, 특히 코엔 형제와 배리 소넨필드가 텔레스트레이터를 앞에 놓고 영화 전체를 해설하는 70분 분량의 영상이 흥미진진하다. 텔레스트레이터란 미국 스포츠 중계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동영상 위에 자유롭게 선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는 기기다. 세 사람은 [블러드 심플]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이 기기를 활용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지적하거나 특정 장면을 촬영한 방법을 알려준다. 설명이 불필요한 부분은 쳐내거나 빨리 감기로 넘기기도 하며, 설명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있으면 영화를 다시 앞으로 감아 설명하기도 한다. 잘만 활용한다면 본편에 음성해설을 입히는 것보다 한결 나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정보나 영감을 준 영화 제목 등이 쏟아지는 통에 좀 알아듣기 어려운 면은 있으나 그 장벽만 넘을 수 있다면 권하고 싶다.





16. Cowboy (지역 코드 All / Twilight Time)


 이 영화를 보고 싶게 한 것도 잭 레먼이었고, 꺼리게 한 것도 잭 레먼이었다. 감독 델머 데이브스와 배우 글렌 포드가 만든 서부극이라는 조합은 [주발(Jubal, 1956)]과 [유마행 3시 10분(3:10 to Yuma, 1957)]을 통해 접한 바 있지만, 잭 레먼이라니? 서부극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가 멕시코 목장주의 딸을 쫓아가기 위해 카우보이의 길로 들어서는 연기한단다. 신체적으로는 서투르지만 꾀 많은 초짜 카우보이의 좌충우돌을 그린 낙천적인 코미디를 예상하게 하는 설명이다. 과연 내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빌리 와일더 영화에서처럼 수다를 떠는 잭 레먼을 보고 싶은 걸까?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 망설였다.

 그런데 웬걸, [카우보이(Cowboy, 1958)]는 [주발]과 [유마행 3시 10분]의 살벌함을 조금도 잃지 않은 [레드 리버(Red River, 1948)] 같은 영화였다! 잭 레먼은 낭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어리석은 죽음과 비겁함만 가득한 카우보이 세계를 겪으며 점점 악에 받친 카우보이로 변한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가르쳤던 글렌 포드는 변해가는 잭 레먼을 보면서 차츰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것만 같던 이야기는 약간 타협적인 결말로 물러나지만, 그야 [레드 리버]도 마찬가지고, 많은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렇듯 그렇다고 해서 도중에 제기된 어두컴컴한 비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위 '수정주의 서부극' 중에서 카우보이 세계를 이처럼 무식하고 비열하게 그려낸 영화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15. Female Prisoner Scorpion: The Complete Collection (지역 코드 AB / Arrow Films)


 미리 말해두자면 이 타이틀은 품질에 문제가 많다. 토에이 영화사가 HD 마스터 제작에 사용한 35mm 필름은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에서 여러 세대를 거친 데다 변색도 심했다. 그 결과 여기 수록된 네 작품 모두 색깔이 원본과 판이해졌으며 필름 그레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노이즈도 몹시 심하다. 결과가 워낙 실망스러운 탓에 일각에서는 Arrow Films가 그런 마스터를 받고도 출시를 강행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도 이 타이틀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만약 다른 출시사에서 더 나은 소스를 찾아 다시 출시한다면(가능성은 낮다) 다시 살 의향이 있다. 그리고 물론 영화 자체도 문제 많다. 설마 카지 메이코라는 여자 스타가 주연한 여자 감옥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주의적 영화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 그런 기대가 있다면 일찌감치 마음을 접는 게 좋다. 그저 카지 메이코처럼 아름답고 날카롭게 생긴 여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만끽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잠깐만. 그렇다면 이 영화들보다는 Criterion에서 출시한 The Complete Lady Snowblood 쪽이 더 낫다. 더욱이 이 시기의 일본 시리즈 영화들이 곧잘 그렇듯, 여죄수 전갈 시리즈 역시 3, 4편쯤에 가면 힘이 빠지고 게을러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실성 따위는 애저녁에 갖다 버리고 스즈키 세이준이 눈물 흘릴 정도로 연극적인 공간과 인공적인 조명을 과시하면서 악에 받친 여자들의 폭력을 흩뿌려 대는 이 영화들이 주는 매혹과 쾌락을 부정하지 않겠다. [여죄수 701호 전갈(女囚701号/さそり, 1972)]에서 강간당한 마츠시마 나미가 분노를 이글거리며 변신하는 대목의 스톱 모션 연출이나 전갈에게 당한 악질 죄수가 목욕탕에서 야차로 돌변하는 순간 앞에서 숨을 헉 들이키며 얼이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여자의 적은 여자' 유의 관습이 도처에 깔려 있다고 해도(여자 감옥 영화에서는 항상 간수 이상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다른 여자 죄수들이 등장한다. 하긴, 남자 감옥 영화에서도 흔한 설정이기는 하다) 여자들이 집단을 이루어 남자들의 공권력과 대립하는 이야기가 제공하는 이미지의 전복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여죄수 전갈 제41 잡거방(女囚さそり 第41雑居房, 1972)]에서 남자 간수가 맞이하는 처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최후─XX에 통나무가 꽂…─라든가 초현실적인 상징에 가까운 결말이 아무리 여성주의를 흉내만 내는 기획이라고 해도, 그 이미지는 남아 반란을 꾀할 것이다.

 화질에는 문제가 많고, 새로 그린 일러스트는 동양인을 눈이 찢어지고 광대가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그리는 못된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Arrow Films가 부록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도 말해두고 싶다. 역시 2016년에 Arrow Films에서 출시한 야쿠자 영화 시리즈물 Outlaw Gangster VIP: The Complete Collection의 부록이 워낙 실망스러웠기에 애초에 눈길도 주지 않았었는데(거기 수록된 비디오 에세이는 지금껏 본 비디오 에세이 중 가장 무의미했으며, DVD의 전성기 시절에 속 빈 강정 같은 음성해설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은 비디오 에세이 쪽에서도 쭉정이가 나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인터뷰들이 뜻밖에 충실하다. 감독, 조감독 등을 인터뷰하고 경력을 정리한 것도 그렇지만 이런저런 영화감독이나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을 데려와 한 편씩 소개하게 하는 영상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길고 깊이 들어가서 놀랐다.

 (참고로 꼭 여성주의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이 시기 일본 중저예산 시리즈물의 당돌한 정치적 에너지를 맛보고 싶다면 2015년 출시작인 탓에 목록에 올리지 못해 가슴 아픈 Stray Cat Rock을 권한다. 이 시리즈는 핑키 바이올런스 영화로 잘못 소개되고 있으나 그보다는 뉴 할리우드 시절에 쏟아져 나온 반문화 바이커 갱 영화에 가깝다. 서부의 총잡이처럼 나타난 부치 바이커가 여자 갱들과 함께 남자 갱들을 무너뜨리고 남은 여자들이 "이곳은 우리들의 도시니까!"라고 다짐하며 손을 잡고 걸어간다거나 탐욕스러운 기성 권력에 포위당한 망나니 젊은이들이 "좋지 아니한가!"라는 노래가 악쓰듯 되풀이되는 가운데 파멸하는 결말 등은 지금껏 생생하게 뇌리에 남는다.)




14. Die Switchblade Sisters (Subkultur Entertainment)


 전에는 6, 70년대의 착취 영화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하도 열광하기에 덩달아 몇 편 보기는 했지만, 비주류 인물을 중심에 내세울 뿐 주류 영화의 문법을 모방하고 선정성만 강화한데다 제작비 등의 문제로 만듦새는 한결 떨어진다는 인상만 받고 금세 등을 돌렸다. 그러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B 영화들을 비롯한 저예산 영화 전반에 더 익숙해지고, 영화에서 서사 자체만큼이나 서사 뒤의 노동을 보게 되고, 또 타란티노의 [사슬 풀린 장고(Django Unchained, 2012)]를 보면서, 착취 영화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착취 영화계의 대표작들은 장르적, 산업적 조건들을 제외하면 그 명칭만큼 착취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특히 흑인 착취 영화들의 경우 참여한 배우들도 부끄러운 과거로 기억하기는커녕 자부심을 갖고 "착취 영화라니? 누가 착취 당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영화를 논할 때 여성 이미지의 재현 빈도와 다양성 자체가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처럼, 착취 영화들이 제공하는 비주류/소수자들의 이미지가 서사를 벗어나 남기는 가치가 있는 것도 알게 됐다.

 착취 영화와 친해지는 과정에서 특히 Arrow Films에서 출시한 잭 힐 감독의 영화 타이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2016년에 나온 잭 힐 영화 타이틀 중에서는 (그가 부분적으로만 참여한) [피바다(Blood Bath, 1966)]와 순진함이 지나친 [생기발랄 치어리더(The Swinging Cheerleaders, 1974)]보다는 독일의 Subkultur Entertainment에서 출시한 [스위치블레이드 시스터즈]가 훨씬 더 권할 만하겠다. 남자 갱들에 맞서는 여자 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들고양이 록 시리즈 중 [여두목 들고양이 록(女番長野良猫ロック, 1970)]과 비교하게 되는데, 사실 서사만 놓고 보면 [여두목 들고양이 록]이 더 낫다. [스위치블레이드 시스터즈]는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지나치게 얽매이는 경향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강간을 비롯한 착취 영화의 문제적 소재들도 여럿 등장한다. 그러나 잭 힐은 선정적 이미지를 붙들고 착취하는 유형의 연출자는 아니고, 도리어 허튼 소리 없이 죽죽 나아가고자 하는 하워드 혹스 풍의 경쾌함이 전편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도 쥐꼬리 만한 예산과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을 데리고 고등학생 갱들이 학교를 지배하고 급기야 혁명군과 결탁해 거리에서 장갑차를 몰고 총싸움을 벌이는 말도 안 되는 가상 세계를 이 정도로 생기 있게 구축할 수 있는 연출자가 몇이나 될까? 영화 속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리고 영화 밖의 인터뷰에서, 잭 힐이 배우들에게 편안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에 능한 배우들의 감독임을 몇 번이고 확인할 수 있었다.

 Subkultur Entertainment에서 출시한 Blu-ray는 독일의 영화사가들이 진행한 본편 음성해설을 제외하면 전부 영어 음성이라 영어 듣기가 어느 정도 된다면 접근성은 높은 편이다. 40분 분량의 밀도 있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이런저런 인터뷰 영상이 담겨 있고, DVD 시절에 녹음했던 쿠엔틴 타란티노와 잭 힐의 본편 음성해설도 수록됐다. 자기 영화에는 음성해설을 녹음하지 않는 타란티노인만큼 그가 오랫동안 영화에 대해 수다 떠는 걸 듣고 싶다면 좋은 기회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배우들의 이름과 경력도 잘 알고 심지어 저 배우는 최근에 LA에서 무슨 연극을 했는데 역시나 훌륭했다는 말까지 스스럼 없이 내뱉는 모습에서 이 사람은 차원이 다른 영화광임을 실감할 수 있다(흔한 오해와 달리 악취미적으로 낄낄거리거나 잘난 척하지도 않는다). 또한 잭 힐은 최근 출시되는 자기 영화 Blu-ray 제작에 열과 성을 다해 참여하고 있는데, 나이가 여든을 넘었으나 워낙 기억도 또렷하고 달변이라 이렇게 원기왕성하신 분은 계속 영화를 연출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참고로 워낙에 보고 싶었던 영화라서 독일판을 사기는 했는데, Arrow Films의 잭 힐 애호를 생각하면([피바다]를 포함해 현재까지 여섯 편 출시) 그쪽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싶긴 하다. 부가 영상 크레딧을 보면 영화 판권도 잭 힐 본인에게 있는 것 같고. 그냥 미온한 관심이 생긴 정도이며 독일 타이틀 주문하기 꺼려진다면 Arrow Films에서 출시한 [스파이더 베이비(Spider Baby, 1967)], [피트 스톱(Pit Stop, 1969)], [커피(Coffy, 1973)], [폭시 브라운(Foxy Brown, 1974)]을 먼저 보며 좀 더 기다려 보는 것도 좋겠다.





13. Return of the Living Dead 3 (지역 코드 A / Lionsgate Films)


 [살아있는 시체들의 귀환 3(Return of the Living Dead 3, 1993)]는 VHS 시절에 자생한 공포 영화 팬들이 호러타임즈와 이글루스 블로그 등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소문을 들은 이래로 줄곧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남자가 죽은 여자친구를 좀비로 만들자 좀비가 된 여자가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좀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소개가 워낙 흥미진진하고 강렬했던 덕분이다. 마침내 Blu-ray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보니 과연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다. 브라이언 유즈나는 Arrow Films에서 출시한 [상류사회(Society, 1989)][시체소생자의 신부(Bride of Re-Animator, 1990)]를 통해 기상천외한 신체 변형 아이디어와 형편없는 연출력을 선보인 바 있는데, [살아있는 시체들의 귀환 3]는 신체 변형 묘사의 과격함은 그대로고 연출력은 한결 나아졌다. 그렇다고 무슨 대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멋대로 토막 난 장면의 리듬과 동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시 망가져 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앞에 머리를 감싸쥐어야 하는 일은 이제 없다. 평균적인 수준의 드라마투르기와 안정적인 연기 위에 [상류사회], [시체소생자의 신부] 급의 신체 변형을 끼얹으면? 걸작이지. 특히 살아있는 시체들의 귀환 시리즈는 첫 작품이 워낙 코미디로 유명해서 그렇지 사실 조지 A. 로메로의 좀비 영화들보다 한결 더 암울한 설정을 뽐내는데, 그것이 가망 없는 로맨스와 결합하자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감정적 동요를 가져온다. 천편일률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서사에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Lionsgate에서 2016년에 새로 선보인 Vestron Video Collector's Series 레이블은 최근의 수집가 대상 패키지 고급화 흐름에 동참한 기획으로, 겉보기에는 좀 부실하게 느껴져도 나름 모양새는 갖추고 있다. 화질과 음질도 꾸준히 평균 이상이고, 약간 구색 맞추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여하간 부가 영상도 새로 제작해 수록했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귀환 3] Blu-ray에서는 특히 주연배우 멜린다 클라크의 인터뷰가 재미있다. 애초에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공포 영화라고 하면 멸시하는 분위기였던 90년대 초에 친구의 부추김에 마지못해 출연했는데 그나마도 개봉 당시 쫄딱 망하는 바람에 묻힌 경력이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어느새 컬트 팬을 얻고 심지어 이렇게 Blu-ray를 만든다고 새로 인터뷰까지 하게 된 상황에 기뻐한다기보다도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게 근사한 좀비를 연기해놓고!





12. I Could Go On Singing (지역 코드 All / Twilight Time)


 한 배우의 육체에 담긴 역사가 한 편의 영화가 들려주는 서사를 넘어서서 현현하는 경우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라든가, 미키 루크의 [레슬러(The Wrestler, 2008)]라든가. 두 살 때부터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고 열세 살 때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 MGM과 전속 계약을 맺어 스물여덟 살 때까지 최정상의 스타로 군림하며 인기와 영예와 극심한 고통을 겪은 뒤 MGM과의 계약이 해지되자 출연작 수가 급격히 줄어든 주디 갈랜드에게는 그런 영화가 두 편이나 있다. 하나는 조지 큐커가 연출하고 제임스 메이슨이 상대역을 맡은 대작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54)]이고, 다른 하나가 이 마지막 영화 [나는 계속 노래할 수 있어(I Could Go On Singing, 1963)]다. 거대하고 화려하고 복잡다단한 [스타 탄생]과 비교하자면 [나는 계속 노래할 수 있어]는 한결 단순하며, '주디 갈랜드가 자신을 연기한다'는 아이디어에 노골적으로 매달린 아류작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주디 갈랜드 본인도 각본이 지나치게 자신의 삶과 가까운 탓에 처음에는 출연을 거절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주디 갈랜드의 육체를 보는 순간 그런 흠결을 탓할 여유는 깡그리 사라진다. [스타 탄생]으로부터 다시 9년 뒤. [스타 탄생]때만 해도 뮤지컬 전문 스튜디오의 스타로서 전성기나 다름없는 춤과 노래 솜씨를 자랑했던 갈랜드는 이제 한결 더 부은 몸과 갈라진 목소리로 돌아왔다. 춤은 기대하기 어렵고, 노래를 부를 때도 어떻게든 예전의 소리에 이르기 위해 온몸을 비틀고 쥐어짜며, 그렇게 안간힘을 써도 그녀의 육체가 쇠하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런 배우가, 자신의 경력을 추구하다 연인과 자식의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 가수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그 사랑을 되찾고 싶어 눈물을 흘리고 술에 의지하면서도, 한 순간도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지상명령에 따라 무대에 올라서, "나는 계속 노래할 수 있어"라고 노래한다. 무엇을 노리는지 어떤 효과가 있을지 다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

 [카우보이]의 경우에도 그러했지만, Twilight Time의 진가는 이처럼 과연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3천 장이 다 팔리는 날이 오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숨은 진주들을 소개하는 안목에 있다. Eureka에서 출시하는 유명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든가 Arrow Films 혹은 Shout! Factory에서 출시하는 장르 컬트 영화와는 또 다른 문제다. DVD Beaver 결산 목록에 이 영화를 올린 제프 하인리히라는 사람을 제외하면 연말 결산에서 [나는 계속 노래할 수 있어]를 거론하는 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Twilight Time은 그런 영화를 조건이 허락하는 한 양질의 화질과 음질을 갖춘 Blu-ray로 출시했고, 음성해설을 새로 두 개나 녹음했다. 그곳의 누군가는 이 영화를 알아보고 좋아했다. 두 음성해설 중 2016년 기준으로 나이가 아흔인 이 영화의 제작자 로렌스 터먼이 참여한 음성해설이 있는데, 잭 힐만큼 발음이 분명하거나 달변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이든 영화인들이 중언부언하는 수준은 훌쩍 넘어선다. 향수에 젖어 좋은 말만 하기는커녕 오히려 사건이랄 게 별로 없는 얄팍한 각본이라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 가운데, 함께 해설에 참여한 Twilight Time 단골 해설자 렘 돕스가 주디 갈랜드 덕분에 그런 단점은 전혀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열정적으로 변호하자 '실로 적확하기 그지없는 관찰입니다. 그보다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운운하는 아주 세련된 언어로 추임새까지 넣는 모습이 만담처럼 웃기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2015년에 출시한 [부러진 창(Broken Lance, 1954)] 음성해설에서도 그랬지만 Twilight Time은 나이가 많은 전 세대의 영화인을 초청했을 경우 본편을 따라가면서 해설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경험 자체를 기록해두고 싶어하는, 말하자면 한국영상자료원의 원로 영화인 구술 채록 사업 같은 태도를 취하곤 하는데, 이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11. Belladonna of Sadness (지역 코드 All / Cinelicious Pics)


 이 목록에 애니메이션은 처음인가? 그렇구나. 어렸을 때도 애니메이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많이 보지도 않았다. 개별 작품을 한두 차례 즐기고 칭송한 적은 있으나 지브리에도, 픽사에도, 디즈니에도 매혹되지는 못했고. 아마 영화에 대한 나의 매혹이 움직임 이전에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앙드레 바쟁의 표현)과 깊숙이 결합된 탓이 아닐까 싶다. 그 점에 있어서 애니메이션이 (카메라로 찍는 유형의) 영화를 능가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쉽게 이입이 가능하며 생동감 넘치는 의인화된 형체들이 펼쳐보이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실적'인 애니메이션보다는 다른 유형의 표현, 자신이 '그림'임을 적극 드러내며 거기에서만 가능한 표현을 추구하는 애니메이션이 오히려 내게는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슬픔의 벨라돈나(哀しみのベラドンナ, 1973)]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성인용 장편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던 테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이 남긴 마지막 성과인 이 작품은 많은 장면을 한 폭의 그림 위에서 카메라를 움직여 훑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 위로 대사와 해설이 내레이션처럼 흘러나오니 어떤 면에서는 그림책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는 동안 한 폭의 그림이 스크롤을 따라 피사체와 거리를 달리하고 시간을 흐르게 하고 서사를 진행시키는 광경은 대단히 영화적, 혹은 애니메이션적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지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대목들에서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상징을 잔뜩 담은 평면 이미지들이 약 먹은 듯 범람하면서 '사실성'에 굳은 뇌를 두들기고 게으른 눈을 홀린다. 역사가 쥘 미슐레의 논픽션 [마녀](한국어판도 출간됐다)를 각색한 서사는 전형적인 중세 마녀재판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때로는 여성 수난을 착취하는 포르노그래피가 되기도 하고, 또 그에 반발하여 6, 70년대 특유의 (난잡하고 순진한) 성 해방과 혁명을 부르짖기도 하다가, 불현듯 여성주의 선언으로 돌변하기까지 한다. 앞서 착취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 착취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동시에 착취 과정에서 태어난 이미지들의 전복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저항하고 박해받는 벨라돈나를 바라보며 '저것은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마음을 시각화하는 장면을 시늉뿐인 여성주의 선언으로만 치부하고 싶지 않다. 개봉 당시 여자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거나, [소녀혁명 우테나]를 연출한 이쿠하라 쿠니히코에게 영향을 미쳤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Cinelicious Pics는 후반제작업체 Cinelicious에서 만든 독립영화 배급 전문 계열사다. 2015년부터는 자사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을 Blu-ray로도 출시하고 있다. 후반제작 전문 업체라는 특성을 살려 [슬픔의 벨라돈나]를 직접 4K로 복원했으며, 감독 야마모토 에이이치, 미술감독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후카이 쿠니, 작곡가 사토 마사히코의 인터뷰를 따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실내인데도 길가의 소음이 들리는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아직 미숙한 면도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고자 했던 '업계 사람'인 야마모토 에이이치는 그렇다 치고 후카이 쿠니나 사토 마사히코는 보통 극장용 영화 Blu-ray의 부가영상에서 만날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더더욱 흥미진진하다. 특히 상냥한 얼굴과 목소리로 자기는 인간들이 싫다는 말을 몇 번씩 되뇌면서 이런 어마어마한 그림들을 그려놓고도 애니메이션에도 아무런 관심없다고 말하는 후카이 쿠니 인터뷰에는 아스트랄한 재미가 있다. Cinelicious Pics는 2017년에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장미의 장례 행렬(薔薇の葬列, 1969)]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는데, 그쪽도 기대하고 있다. 참고로 혹시 예쁜 패키지에 약한 사람이라면 패키지 근사하게 만들기로 유명한 영국(스코틀랜드)의 애니메이션 전문 배급사 Anime Limited에서 [슬픔의 벨라돈나] 판권을 사서 2017년에 출시할 예정이라니 패키지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도 좋겠다.





10. Dead-End Drive-In (지역 코드 AB / Arrow Films)


 착취 영화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사실 착취 영화에 관한 담론에서 가장 착취적인 것은 착취(exploitation)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그래서 나도 앞으로는 쓰지 말아야 할까 고민도 하고 있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맥락을 부여하기 위해 계속 쓰기로 하자). 착취 영화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엉성하게 늘어놓고 눈먼 돈을 가져가는 장사꾼의 이미지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런 장사꾼들은 많겠지만, 막상 착취 영화라는 표현이 생긴 시기의 대표작들에서는 니들 이런 거 좋아하지? 끝내주지? 하면서 낄낄거리는 뉘앙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건 [그라인드하우스(Grindhouse, 2007)] 이후에 동시상영관의 싸구려 영화들을 흉내 내서 만든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들이 훨씬 심하지. 당대의 착취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에서 진중한 야심을 발견하고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컨대 잭 힐은 [스위치블레이드 시스터즈]를 [오셀로]의 여성 버전이라고 생각하고 연출했는가 하면 혈혈단신 마약상에게 복수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커피]를 만들면서는 악당 역을 맡은 (셰익스피어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에게 [리처드 3세]를 상기시키며 연기를 지도했다. 그 유명한 장사꾼 로저 코먼조차도 품위 있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며, 돈벌이를 위해 영화를 기획할 때도 그 영화가 새로이 자극할 만한 사회적, 예술적 함의를 함께 생각해서 틈새 시장을 찾곤 했다(돈만 밝히는 장사꾼은 그런 에드거 앨런 포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한 번 웃고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자기가 먼저 나서서 '싸구려 영화'를 만들려 들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즈플로이테이션(ozploitation), 즉 오스트레일리아 착취 영화에 속하는 [막장 자동차 극장(Dead-End Drive-In, 1986)]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이 없는 청년들을 자동차 극장에 수용한다는 설정과 매드 맥스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자동차 추격 액션이 나온다는 설명을 언뜻 들으면 방방 뛰어다니며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는 웃기는 짬뽕 같은 영화겠구나 생각하게 되지만, 막상 영화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얼마 전 한국의 청년실업율도 9.8%로 역대 최악을 찍었다고 하거니와,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들(그들은 펑크 세대이기도 하다)을 한곳에 가둬놓고 (재사회화 노력조차 없이) 식권을 주며 영화나 보게 한다는 설정은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아무래도 살벌하다. 물론 그렇게 수용된 청년들 중에는 어차피 밖에 나가봐야 할 일도 없는데 먹여주고 영화 보여주는 여기가 낫다고 안주하는 사람이 대다수. 그리고 그런 폐쇄 · 통제 사회 안에 새로운 외국인 인구가 유입되면? 당연히 '너희 나라로 꺼져' 식 인종차별이 시작된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고. 물론 자동차 추격도 있고 격투 액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네온 불빛이 번쩍이는 암담한 미래 사회의 풍경이 무게를 잡아준 뒤의 일이다. [스위치블레이드 시스터즈]와 마찬가지로 나는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이런 세계를 생생히 형상화 할 수 있는 연출자를 존경한다.

 하지만 이 타이틀을 10위로 꼽은 것은 영화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도 Blu-ray 전체의 즐거움 때문이다. 일단 [블러드 심플]도 그랬지만 이처럼 네온 불빛이 번쩍이는 영화들은 특히 디지털 복원의 힘을 받으면 유독 화면이 근사해진다. 네온 사인을 내세운 새 커버 디자인도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런가 하면 브라이언 트렌차드-스미스 감독도 잭 힐 감독과 마찬가지로 달변이라 본편 음성해설 듣는 즐거움도 각별하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부가 영상이다. 바로 브라이언 트렌차드-스미스가 연출한 짧은 영화 두 편. 먼저 [스턴트맨(The Stuntmen, 1973)]은 스턴트맨에 관한 TV용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스턴트맨의 촬영 현장을 찾아가 취재하고 애환을 듣는 식의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면 오산. 브라이언 트렌차드-스미스 감독은 아예 스턴트 팀을 이끌고 다양한 스턴트 장면들을 새로 연출한 뒤 해당 장면의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특정 영화의 스턴트 현장을 취재하는 식이 아니라 아예 스턴트를 위한 장면을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설명도 정확하고 볼거리도 풍부하다. 그리고 [병원은 불타지 않는다(Hospitals Don't Burn Down, 1978)]는, 아, 이건 정말…… 병원에서 함부로 담배 피우지 말자는 주제를 담은 일종의 산업 영화라고는 하는데…… 24분의 상영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특수효과와 스턴트를 동원해서 대형 종합병원이 불타고 사람들이 너나 없이 죽어나가는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담아낸 재난 영화다! 전 세계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고 발표 후 약 25년 가량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산업 영화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감독도 자기 연출작 중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아마 다들 산업 영화로서의 유익함을 떠나 그 막 나가는 오락성에 취한 게 아닐까. [스턴트맨]과 [병원은 불타지 않는다] 모두 영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지만, 자막이 없어도 감상이 어려운 영화는 아니니 꼭 보기를 권한다.

 여담이지만 위의 캡처 이미지에 보이는 뒤쪽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영화는 브라이언 트렌차드-스미스가 연출하고 왕우와 조지 라젠비가 출연한 오스트레일리아-홍콩 합작 액션 영화 [홍콩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Hong Kong, 1975)]다. 이 영화도 2016년 10월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제작사 Umbrella Entertainment에서 지역 코드 제한 없고 영어 자막 있는 Blu-ray로 출시했다. 여기에는 [스턴트맨]을 포함한 브라이언 트렌차드-스미스의 다른 연출작이 무려 다섯 편이나 수록돼 있다고 한다. 다만 이 다섯 편의 화질은 SD고, 영어 자막은 없고, 수록작 중 [스턴트 록(Stunt Rock, 1980)]은 2.35:1인 화면을 위아래로 잡아 늘려 1.78:1로 수록하는 오류를 범한 모양이다. Arrow Films에서 출시해 줄 가능성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9. From Noon Till Three (지역 코드 All / Twilight Time)


 이 영화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겠다. 찰스 브론슨이 주연을 맡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코믹 서부극을 보고 싶어서 스코어 트랙과 예고편 외에는 음성해설도 부가 영상도 없는 Blu-ray를 29.95달러에 배송료까지 내고 주문할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이 영화가 주는 뜻밖의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으하하하. 2017년에도 이런 영화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





8. Tenebrae (지역 코드 A / Synapse Films)


 홈비디오 시장의 다리오 아르젠토 사랑에는 끝이 없어라. 2016년에는 [짙은 빨강(Profondo rosso, 1975)]과 [테네브레(Tenebrae, 1982)], [페노미나(Phenomena, 1985)]가 각각 해당 영화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판본으로 다시 소개됐다. 세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은 [짙은 빨강]일 테고 가장 공을 많이 들인 타이틀은 [페노미나]가 아니겠나 싶지만, 나는 처음 만난 [테네브레]를 꼽기로 했다. 단순히 처음 본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테네브레]는 여성혐오적인 내용의 공포 소설을 쓰는 공포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연쇄 살인을 겪는다는 설정을 통해 다리오 아르젠토의 입장을 반영하는 메타 지알로라는 식으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그 메타성은 가벼운 장난이나 자기 변명 이상은 아니었고, 오히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치고도 유독 두드러졌던 공간에 대한 묘사였다. 6~80년대에 나온 이탈리아 공포 영화나 스릴러를 보면 유독 현대 도시 건축 공간의 힘이 강렬하다. 터무니없이 거대하고, 황당하리만치 텅 비어 있고, 과도하게 투명하고, 기하학적으로 돌출한 공간들.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착시현상이 생기거나 현실과 유리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비인간적인 매혹이 도사린 공간들(한국 영화 중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몇몇 영화에서 그런 공간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이탈리아 시절 대표작들에서 보게 되는 그런 공간의 오묘함이 [테네브레]에도 있었다. 여기서 다리오 아르젠토는 '무언가 보았고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특유의 주제─이 또한 안토니오니가 [확대(Blow-Up, 1966)]에서 다루었던 주제인데─를 건축물의 구조와 결합해서 트릭을 만들기도 하고, 기기묘묘한 건출의 외관을 카메라로 훑으며 창문들을 훔쳐보는 것만으로 공간의 추상성을 부각하여 시각적 혼란과 쾌락을 안기기도 한다. 이것은 이전까지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를 보면서는 충분히 의식하지 못했던 요소였다. 여전히 이 사람의 영화를 보고 다시 발견할 즐거움이 남았다는 생각에 기뻤다.

 Synapse Films가 힘 주어 만든 타이틀의 우수함에 대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2017년에는 드디어 [서스피리아(Suspiria, 1977)]도 내놓을 듯한데, 벌써부터 2017년 결산 목록 한 자리를 맡아놓고 있다. 게다가 뜬금없이 Scorpion Releasing에서 난폭하고 아스트랄한 괴작 [오페라(Opera, 1987)]까지 새로 복원해 출시한다고 하니 2017년에도 다리오 아르젠토의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Shameless에서 내놓았던 [회색 벨벳 위의 네 마리 파리(4 mosche di velluto grigio, 1971)]만 어디선가 조금 더 손을 보아 다시 내주면 좋겠다(독일 Koch Media 판본이 우수하긴 한데 독일어 자막뿐이다).





7. La polizia chiede aiuto (지역 코드 B / Camera Obscura)


 Arrow Films에서 열심히 지알로 영화들을 출시한 해였고, 그 열정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바이다. 하지만 결국 Arrow Films의 노력은 Camera Obscura의 안목과 실력을 돋보이게 해주기 위한 장식 노릇을 하고 말았다는 짓궂은 생각도 든다. 흥행 보증 수표였던 [짙은 빨강(Profondo rosso, 1975)]이야 논외고, 박스 세트 Death Walks Twice: Two Films by Luciano ErcoliKiller Dames: Two Gothic Chillers by Emilio P. Miraglia에 수록된 작품들은 재미는 있지만 허름한 구석도 적지 않다는 게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작품만 놓고 보았을 때 Arrow Films 지알로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피투성이 나비(Una farfalla con le ali insanguinate, 1971)]가 아니었나 싶은데, 이건 Camera Obscura와 공동으로 진행한 작품이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 출시한 [솔란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Cosa avete fatto a Solange?, 1972)]도 분명히 재미있었지만, 이를 연출한 감독 마시모 달라마노의 기량을 좀 더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영화보다는 Camera Obscura에서 출시한 [경찰이 도움을 청하다(La polizia chiede aiuto, 1974)]였다. 결국 연말 결산에 이름을 올릴 만한 알짜배기는 Camera Obscura가 가져갔달까.

 Camera Obscura에서 선정한 작품들은 지알로로 분류된다고 해도 다리오 아르젠토 식의 본격 지알로라기보다는 혼성 장르의 성격을 띠며, [경찰이 도움을 청하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실 본령은 여자 검사와 남자 형사가 일련의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수사물이고 사이사이에 지알로 특유의 요소를 흩뿌린 정도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정도다. 더구나 둘을 각각 떼어놓고 생각하면 수사물이라기에는 수사 주체가 수동적으로 사건에 끌려다니기만 하고, 지알로라기에는 그 특성이 너무 지엽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둘이 하나로 맞물리자 서로 결점을 덮어주고 경찰 수사물의 진지함과 지알로의 자극을 북돋우며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더니 급기야 사회 비판 드라마의 영역에서조차 장르 클리셰로만 주저 앉지 않고 일말의 공분과 안타까움을 끌어내기에 이른다. [살인의 추억(2003)]이나 [마더(2009)]를 장르 스릴러로 접근한 외국인 관객의 기분이 이와 비슷했으려나? 역시 2016년에 Camera Obscura에서 출시한 스릴러 [아니오, 사건은 잘 해결됐습니다(No il caso è felicemente risolto, 1973)]와 더불어 그간 장르 우주 안에서만 생각하곤 했던 이탈리아 스릴러에 '중력'을 더해준 작품이라 하겠다.

 Camera Obscura에서 출시한 Blu-ray는 언제나처럼 소책자와 음성해설을 포함한 모든 내용을 독일어와 영어로 제공한다. 부가 영상은 평소보다 빈약하지만, 본편에 수록하지 않은 하드코어 장면을 발굴해 넣은 치밀함과 용기에는 경의를 표한다(수사적인 표현으로 "하드코어"라고 한 게 아니라 정말 남녀 성기가 적나라하게 등장하고 성행위를 하는 하드코어 장면이다). 다만 이 Blu-ray를 감상하는 동안 한국인 수집가로서는 두 가지 우울함을 느꼈다. 하나는 본편 음성해설. Camera Obscura 타이틀에 꾸준히 참여하는 독일 영화학자 마르쿠스 슈티글러와 영화감독 도미니크 그라프가 녹음했는데, 둘 다 쉴새 없이 개인 감상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보를 쏟아내면서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걸 들으며 문득 한국에서라면 정전에 이름을 올리거나 널리 추앙받는 작가의 영화도 아니고 영어권 영화도 아닌데다 40년도 전에 나온 남의 나라 영화에 대해서 저 정도로 이야기하는 게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다. 언어와 지역, 문화 경험의 차이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최근 한국 출시사들도 외국 영화에 대해 한국 평론가나 감독, 기타 전문가들의 음성해설을 녹음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그 자체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룰 수 있는 영화가 과연 어디까지일 것이며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을지. 또한 Camera Obscura가 모든 정보를 자국어와 영어로 소개하고 있으며 한 해 동안 두 타이틀을 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남의 나라에서 만든 딱히 유명하지도 않은 장르 영화를 자체 복원하여 출시하는 소규모 사기업과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 자국의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정전을 복원하여 출시하는 공공기관을 비교해서 (영화 선정을 별도로 놓고 보더라도) 압도적으로 전자의 손을 들고 싶어진다는 사실이 좀 씁쓸했다. 그나마도 한국영상자료원은 [오발탄(1961)] Blu-ray를 잘못 만들어 놓고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다시 제작할 예산이 없어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한숨이 나오지.

 Camera Obscura 이야기하는 김에 약간 다른 이야기 한 가지만 더. 오늘날 디지털 복원이 보편화 되어 수십 년 묵은 영화들을 어제 찍은 듯 반짝반짝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크나큰 축복이다. 하지만 그렇게 복원된 디지털 마스터가 해당 영화의 '결정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때로는 영화의 본래 생김새를 덮어 쓰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디지털 수정주의 이야기다. 디지털 복원 초창기에만 해도 소비자들은 그냥 전문가들을 믿었고, 특히 해당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감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것이 제대로 된 판본이구나' 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이 잦아짐에 따라 이제는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감수에 참여한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현재 자신의 입맛에 맞게 색채를 조정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필름을 스캔하고 복원하여 디지털 마스터를 만드는 업체에서 원본 필름과는 무관하게 자신들 고유의 색채를 가미하는 경우도 흔하다. 후자의 경우 가장 유명한 사례는 프랑스의 복원 업체 에클레르와 이탈리아 시네마테크 볼로냐의 복원 전문 업체 리마지네 리트로바타다. 둘 다 기껏 필름 스캔해서 복원 잘 해놓고 청록색 혹은 황색을 강조하거나 덧입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애석하게도 많은 홈비디오 출시사나 복원 주체들이 이상하리만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그래서 그간 적지 않은 영화들이 '원래 이런 색깔이었을 리가 없는' 형태로 '복원'되었다. 홈비디오 타이틀 리뷰어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예전에 나왔던 다른 판본과는 색감이 많이 달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일단 그거 말고는 화질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곤 하고, 소비자들도 '내 보기엔 괜찮은데? 옛날에 내가 보던 거랑 비교하면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하며 오케이 하는 가운데 몇몇 '까탈스러운' 사람들만 포럼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눈총을 받곤 한다. 이런 일이 워낙 많다 보니 결국 그런 '최신 복원판'이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살린 결정판으로 남아 원래 영화의 모습이 잊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억누르기 어렵다. 아무리 영화에는 '원본'이 없다지만…….

 Camera Obscura는 일부 작업을 믿을 만한 업체에게 하청 주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주요 작업을 직접 한다. 그러나 2016년에는 계약 관계상 자신들이 다루는 작품을 정해진 기간 내에 다른 업체에 제공하거나 공유해야 해서 88 Films와 공유하기로 한 [쾌락을 찾아서(Alla ricerca del piacere, 1972)]와 Arrow Films와 공유하기로 한 [피투성이 나비]의 필름 스캔 및 색보정을 리마지네 리트로바타에 맡겼다. 미리 색보정 샘플을 받아보고 승인한 뒤 작업을 시작했지만, 리마지네 리트로바타는 결국 샘플 때와는 다른 결과물을 보내 왔다. Arrow Films는 이 [피투성이 나비] 마스터에 만족하여 그대로 출시했으나 Camera Obscura는 자체 작업을 통해 둘 모두에서 리마지네 리트로바타의 인장을 걷어내기로 했고, 먼저 88 Films에 공급하기로 한 [쾌락을 찾아서]를 수정한 후 지금은 [피투성이 나비]를 재작업 중이라고 한다. Camera Obscura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이제 교훈을 얻었으니 다시는 다른 업체에게 이런 작업을 맡기지 않을 것이며 특히 에클레르와 리마지네 리트로바타의 수정주의적 색보정에 반대하는 만큼 앞으로 함께 일할 일은 없을 거라고 공표했다. In Camera Obscura I believe. (그리고 [피투성이 나비]를 다시 사겠지!)





6. It's Such a Beautiful Day (지역 코드 All / Bitter Films)


 애니메이션 타이틀 하나 더. DJUNA가 2015년에 [내일의 세계(World of Tomorrow, 2015)]를 본 뒤 최근에 나온 SF 영화 중 최고라고 말한 뒤로 그 작품을 만든 미국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돈 허츠펠트에게 관심이 생겼다. 타이틀을 찾아보니 그는 2000년대 초부터 자기 작품의 DVD를 직접 제작해 판매해 왔고, 2015년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날(It's Such a Beautiful Day, 2012)]과 [내일의 세계]를 담은 Blu-ray를 제작하기 위해 킥스타터 모금을 했다가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두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른 단편들도 새로 리마스터해서 규모를 키우기로 한 상태였다. 그 첫 Blu-ray가 마침내 2016년에 나왔다. 개인 제작이라고 해서 작품을 수록하는 데에만 의의를 둔 썰렁한 모습을 예상하면 오산. 10년 넘게 자기 작품의 물리 매체를 만들었던 독립 제작자답게 Blu-ray도 커버 디자인, 소책자, 메뉴 화면, 영상 및 음향 품질까지 남부럽지 않게 뽑아냈다. 게다가 영화제 대담 영상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 청각장애인용 영어 자막까지 넣었다! 대사가 많고 청각장애인용 지시문이 워낙 성실한 탓에 영상을 많이 가려서 아쉽지만, 이 정도면 넙죽 엎드려 절해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그렇게 접하게 된 작품은 어땠는고 하니, 처음에는 그림은 봉선화(棒線畵)로 찍찍 그려 놓고 괜찮은 이야기에만 의지해 '감동'을 끌어내는 스타일인가 싶었다. 헌데 점점 실사 촬영, 분할 화면, 다중 노출, 스톱 모션 등의 효과가 폭격처럼 쏟아지면서 눈을 홀리는 가운데 사소한 개인의 삶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시간을 넘나들고 인간과 우주의 미래로 폭발하듯 뻗어 나가는 SF로 발전하는 게 아닌가. 표제작 [참으로 아름다운 날]만 보았을 때는 감동은 하면서도 한 남자의 삶을 표준으로 삼아 초월과 우주와의 합일에 이르는 것이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2011)] 같은 영화가 아닌가 싶어 찜찜한 구석이 남기는 했다. 물론 그것도 [생명의 나무]보다는 가이 매딘 식의 자전-실험-환상 영화에 가까워 [생명의 나무]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했지만. 허나 이전에 만들었던 단편들과 가장 최근작인 [내일의 세계]까지 보고 나니 이 사람은 거기에서 멈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직까지는 '운명지어진' 우주 안에서 개인의 아름다운 순간과 의지를 포착하는 테드 창 소설을 읽을 때의 답답함이 남아있기는 한데(그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주제를 변주하는 것 외에 달리 할 게 남아있을까?' 싶다는 뜻에서), Blu-ray에 수록된 차기작 예고를 보면 [내일의 세계]에서 더 나아가고자 하는 기색이 느껴지니 앞으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5. 10 Rillington Place (지역 코드 All / Twilight Time)


 [바이킹(The Vikings, 1958)]이나 [마이크로 결사대(Fantastic Voyage, 1966)] 같은 '추억의 영화'를 여럿 연출했기 때문인지 도리어 별반 중요치 않은 감독으로 취급받곤 하는 리처드 플라이셔가 영국으로 가서 악명 높은 연쇄 살인범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릴링턴 플레이스 10번지(10 Rillington Place, 1971)]가 나에게 남긴 감동의 근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물론 아니고, 연쇄 살인범의 심리학일 리도 없고, 사회안전망 바깥의 무지한 피해자가 어리석게 덫에 걸려 자멸하고 마는 과정의 참담함이나 사악함에는 아마도 몸서리를 치며 깊게 반응했던 것 같지만, 종국에는 그런 요소를 다 접어두고 그저 살인을 앞두고 피해자에게 먹일 밀크티를 준비하여 불안불안하게 찻잔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리처드 아텐보로의 모습에서 느꼈던 엉성한 공포랄지, 필시 사실적으로 재현했을 터이나 너무 어둡고 허름한 탓에 도리어 세트처럼 보이고야 마는 협소한 공간 앞에서 느꼈던 초현실적인 자력(磁力) 같은 것만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한국 영화에서도 더럽고 누추하고 빈곤한 공간이야 무수히 표현되었으나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거늘, 그게 그저 영국과 한국의 시대와 문화적 차이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짚어내지 못한 리처드 플라이셔 영화의 어떤 특성인지, 아니면 그저 일시적인 기분에서 오는 착각이었을 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밝은 봄날에 커튼을 친 채 아직 TV도 없어서 컴퓨터 모니터로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 생경한 한기는 한 해가 다 가도록 가시질 않았다.

 Twilight Time에서 음성해설 두 개를 수록한 준수한 Blu-ray를 출시하고 몇 개월 뒤 다시 영국 Powerhouse Films에서 Twilight Time의 구성을 이어받아 2016년 11월에 배우 리처드 아텐보로와 주디 기슨의 인터뷰를 추가로 수록하고 더 풍성한 소책자를 수록한 Blu-ray/DVD 콤보를 내놓았다. 5천 장 한정으로 출시한 이 Powerhouse Films 초판은 조만간 품절될 전망이라고 하니 욕심이 있다면 너무 망설이지 않는 편이 좋겠다(단, 한정판이 다 나간 뒤에는 다시 Blu-ray 디스크만 수록하고 소책자를 뺀 일반판이 나온다고 한다).





4. The American Friend (지역 코드 A / Criterion)


 [파리, 텍사스(Paris, Texas, 1984)]도,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über Berlin, 1987)]도 좋아할 수 없었던 빔 벤더스. 하지만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미국인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 1977)]에는 넘어가고 말았다. 과거 Star/Anchor Bay에서 출시한 DVD를 사기는 했으나 독일어 대사에만 영어 자막이 있고 영어 대사에는 영어 자막이 없어서 좌절하고 돌아선 뒤 몇 년을 기다렸는지. 그러므로 가장 먼저 독일어 대사용 영어 자막과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따로 넣어준 Criterion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다. 예전에는는 '외국어 영화'의 영어 대사에 자막을 넣지 않았던 Criterion이라 더욱 반갑다. 지금이라도 문제를 깨달았다니 다행이지. 아울러 일찍부터 작품 보존의 중요성을 깨달아 빔 벤더스 재단을 설립하고 자기 작품을 보존하고 복원한 빔 벤더스 감독도 (자기 이름으로 된 재단을 세워 자기 작품을 보존하다니 좀 민망하다는 생각도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고맙다. 오리지널 35mm 네거티브 필름을 4K 복원한 디지털 복원판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이 영화에 대한 매혹의 8할은 촬영감독 로비 뮐러가 담아낸 그 색채 덕분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영화인고 하면, 못된 범죄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캐롤(Carol, 2015)]의 원작자이기도 한─가 쓴 범죄자 리플리 시리즈 중 두 편을 원작으로 삼아 느슨히 엮었는데, 프랑스 범죄 세계 거래처의 청탁을 받고 청부 살인을 해줄 '뉴 페이스'를 찾던 위조 미술품 중개상 리플리가 경매소에서 자신에게 무례하게 군 액자공 조나단을 점찍은 다음 그가 혈액 질환 때문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게 만들어 청부 살인의 세계로 내몬다는 황당무계한 줄거리를 토대로, 지리적으로는 뉴욕과 파리와 함부르크를 오가고, 언어는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 쓰면서, 소설 속 리플리와는 도무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데니스 호퍼에게 배역을 맡겨 카우보이모자까지 씌우는가 하면, 빔 벤더스가 존경하는 미국의 두 거장 니콜라스 레이와 새뮤얼 풀러도 각각 화가와 갱스터로 캐스팅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리플리와 조나단이 여러 광학 장난감을 교환하며 우정을 싹 틔우게 하는 등, 영화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자란 영화광으로서의 자신을 한껏 투사한, 느릿느릿 흘러가는 아트하우스 영화일 것만 같지만 엄연히 훌륭한 살인 장면도 여럿 있어 범죄 영화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작가 영화'로 숭앙하며 근엄히 의의를 따지고만 있기에는 참으로 헐렁하고 웃기고 개구지며, '의미심장'하게 넣은 듯한 디테일에서도 의미는 휘발된 채 재미난 제스처만 남아 넘쳐 흐르는, 대체 이게 왜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즐거운지 짚어 말하기 어려운 잡탕밥 같은 영화다. Criterion 부록으로 들어간 빔 벤더스와 브루노 간츠의 인터뷰에서도 데니스 호퍼가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촬영하다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촬영 현장에 와서 난리치다가 브루노 간츠랑 주먹질을 벌인 끝에 다음 날 친구가 되어 나타났다는 따위의 일화가 잔잔하게 펼쳐져 웃음을 더하는데, 다만 빔 벤더스와 데니스 호퍼가 함께 녹음한 본편 음성해설은 혹시나 빔 벤더스가 이건 무슨 뜻이고 저건 무슨 뜻이고 하는 이야기를 할까봐 아직 안 듣고 있다.





3. A Brighter Summer Day (지역 코드 A / Criterion)


 대만 갱스터 영화(농담 아님)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인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枯嶺街少年殺人事件, 1991)]이 드디어 제대로 된 복원판으로 도착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환영할 일이다. 첫째로는 응당 이러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훌륭하고 재미있는 영화이기 때문. 둘째로는 드디어 '본 사람만 보았고 소문만 파다한 걸작'이라는 지위를 걷어찰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전자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후자도 무척 중요하다. 제발 이름난 작가에 대한 섣부른 숭배 의식을 걷어치우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말합시다. '아는 사람들'은 영화 제목을 던진 뒤 과도하게 열광적인 감탄사와 술자리에나 어울릴 파편적인 의견만 뿌려놓고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 네가 영화를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경멸의 눈초리를 던지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에 기가 죽기도 하고 반발심도 생기고 또 거짓된 허영심에 몸이 달기도 하여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주워섬기거나 '아는 사람들'이 한 말을 확인하고 동감을 표함으로써 자신도 그만한 안목이 있는 척하기 위해 영화를 '체크'하는, 그런 분위기가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박제하거나 침묵으로 밀어 넣고 있는지 모른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관련글들을 검색하다 또 그런 우울을 맛보았다. 주인공 샤오쓰에게만 한껏 이입해서 그가 들고 다니는 손전등이 진실을 비추는 빛이라느니, 순수한 소년이 배신으로 점철된 세상의 변화에 상처 입고 좌절한다느니, 후반부에서 그가 영화감독에게 말하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영화를 만든다는 거야?"라는 대사를 감명 깊게 인용하는 등등의 반응이 다소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고 있지 않나. 그게 알기 쉬우면서도 그럴 듯한 통찰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이건 완전 여성혐오 영화 되는 거잖아. 남자들의 의리와 낭만으로 점철된 세계에 몇 번이고 거리를 두고, 샤오쓰가 점점 망집에 사로잡혀 간다는 걸 강조하려 애쓴 노력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같은 맥락에서 어쨌든 이것은 남성의 시선에 관한 영화이자 그 실패를 담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남성 중심성조차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이야기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전부터 에드워드 양을 거장이라고 칭송하는 데에만 심취하여 그가 무슨 인생에 사통팔달하여 대하가 흘러가듯 잔잔하고 신비한 방식으로 영화를 자아내는 신선인 양 '아…….' 하고 탄식만 내뱉고 넘어가는 경우도 곧잘 접했다. 하지만 이 영화나 [하나 그리고 둘(一一, 2001)]이나 그렇게 '도 통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틈만 나면 화면 구도나 인물과 사건 배치에서 의도와 계산과 작가적 의식을 드러내는 영화 아닌가(위의 캡처는 완전 마리오 바바 오마주 아닙니까?). 장대한 시간 동안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시대를 그린다는 거대한 기획이 곧잘 그렇듯 상징화가 도드라지면서 무리하는 순간도 있고. 그처럼 나는 이런 장면들이 좋았다, 여기는 조금 속 보이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부분 때문에 상쇄되는 면도 있다, [하나 그리고 둘]에 비하면 어떻다, 하면서 재미나게 씹고 뜯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인데 오오 에드워드 양 오오 대만 영화 오오 전설의 걸작 오오 Criterion 오오 나도 샀다 이러기만 하면 답답하지.

 그러므로 한 번 보고 '훗, 나도 네 시간 들여 그 이름난 걸작을 본 사람 중 하나지'라고 자부심 느끼는 데에서 자족하지 말고, 몇 번이고 다시 보며 즐기고 곱씹을 수 있게 된 이 여건을 한껏 누리면 좋겠다. Criterion 타이틀 소책자에 평론가 갓프리 체셔가 "[대부(The Godfather, 1972)]의 무게와 장대함을 지닌 대만판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 같은 영화"라고 했던데, 정말 그런 재미가 있는 영화 아닌가. 미칠 듯이 따분하고 겉멋만 들어서 시간을 견디네 어쩌네 하는 롱테이크가 잔뜩 들어간 것도 아니고, [옛날 옛적 미국에서(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도 여러 번 보는데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그렇게 보지 못할 건 뭐람.

 에드워드 양의 [청매죽마(靑梅竹馬, 1985)]도 최근에 복원돼서 Blu-ray가 나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대만 영화 복원이 활발해서 참 부럽다. 꼭 Criterion 아니어도 좋은 출시사 많으니까 어디서든 쭉쭉 나왔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토니 레인즈, 혼자서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음성해설을 녹음한 그 열정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자기는 화면에 빤히 나오는 걸 묘사하는 따위의 음성해설이 싫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면서 장면장면 저 사람은 누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도 그 사이사이로 '해설'까지 곁들이는데, 이런 화법의 '아시아 예술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감상자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거랑 소책자 에세이랑 대만 뉴웨이브에 관한 다큐멘터리까지, Criterion은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아는 사람들'만 보는 영화가 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2. Dissent & Disruption: Alan Clarke at the BBC (1969-1989) (지역 코드 B / BFI)


 이 비싸고 커다란 타이틀을 냉큼 지른 것만으로도 2016년의 과소비는 가치가 있었다. 1967년부터 1989년까지 주로 TV 업계에서 활동하면서 사회 곳곳의 풍경을 쑤시는 도발적인 작품들을 만들며 성장을 거듭했던 알란 클라크의 작품 중 BBC에서 연출한 스물세 편(유실된 작품은 제외)을 Blu-ray 열한 장과 DVD 두 장에 모은 이 타이틀은, 과연 듣던대로 BFI 사상 가장 야심 차고 중요한 타이틀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권해보고 싶은"이라는 주제에 맞게 먼저 두 가지 경고. 첫째, 대다수 작품이 억양 강한 영국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초기작은 대사량이 많고 빠르고 후기작은 전제를 설명하지 않은 채 상황 한가운데에서 툭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다. 어차피 자막을 '보기'만 하므로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경험상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문자 언어와 귀에 들리는 음성 언어가 함께 갈 때 자막을 따라가기가 쉽다. 이 정도로 대놓고 영국 영어 쓰는 작품들은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좀 어려웠다. 둘째, 이런 모음집을 앞에 두면 '작가'의 발전상을 보겠다면서 연도순으로 앞에서부터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언어 장벽이 없고 영화 볼 시간이 넉넉하고 의지가 강한 감상자가 아닌 이상 그러지 않는 편을 권한다. 실은 내가 처음에 그랬는데, 연도순으로 맨 첫 번째 작품인 [피신처(Shelter, 1967)]는 계급 의식과 중산층의 허위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매우 불쾌하게 여성 혐오적인 이야기였고, 두 번째 작품인 [신사 방문객(The Gentleman Caller, 1967)]도 여성 혐오는 아니지만 아주 불쾌한 세 남자의 기싸움을 다루며, 세 번째 작품─정확히는 네 번째 작품이지만 세 번째 작품인 [조지의 방(George’s Room, 1967)]은 다른 케이스의 다른 디스크에 들어있는 탓에─인 [잘 자렴 알버트(Goodnight Albert, 1968)]는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을 다룬 비교적 훈훈한 작품이었으나 대사 따라가기가 무지하게 어려웠다. 30분이 채 안 되는 TV용 단막극 세 편에 불과하기는 해도 그렇게 세 편을 연달아 보고 났더니 의욕이 뚝 꺾이는 바람에 한동안 이 박스 세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의욕을 되찾고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 그래도 이렇게 비싼 걸 샀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에 최후기작 중에서 제목이 마음에 드는 [크리스틴(Christine, 1987)]을 무작정 꺼내 보고 턱주가리가 너덜너덜해지게 한 방 얻어맞은 다음 거기서부터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띄엄띄엄 제목에 눈길이 가는 작품을 골라 보면서부터였다.

 그렇게 이것저것 섞어 보면서 어떤 재미를 찾았는가. 우선 경력 초기에는 대사에 많은 것을 의지한 '연극적'인 작품들을 만들던 연출자가 조금씩 자기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더듬는 즐거움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알란 클라크는 스테디캠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걸어다니는 인물을 따라가는 촬영으로 유명한데, 사실 그건 [길(Road, 1987)], [코끼리(Elephant, 1989)], [펌(The Firm, 1989)] 같은 경력 말기의 일부 작품에서만 비로소 채택한 방식이다. 하지만 그 직전에 만든 [크리스틴]을 보면 비슷한 방식을 핸드헬드로 먼저 시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접촉(Contact, 1985)]처럼 시작도 끝도 없고 목표도 진행 방향도 심지어 적도 없는 괴이한 전쟁 영화가 갑작스런 영감 속에 툭 터져나온 것도 아니다. 전 경력에 걸쳐 알란 클라크는 꾸준히 자기 영화에서 플롯을 희박하게 만들고, 대사를 걷어내면서 꼭 필요한 표현법만을 정련해나갔다. 그 부단한 노정을 이 박스 세트를 통해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원숙한 후기에 이르기 전의 작품들은 미숙하고 재미없는 작품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소재만 보더라도 어쩜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면면이 새롭다. 첨예한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느니 하는 소개 때문에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롤러 스테이트 디스코의 스타들(Stars of the Roller State Disco, 1984)]은 일자리가 없는 청소년들을 롤러스케이트장에 수용해 놓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미래 사회를 그린 [막장 자동차 극장]과 [롤러볼(Rollerball, 1975)]을 합쳐 놓은 듯한 SF고, [에밀리의 추종자(A Follower for Emily, 1974)]는 자유롭고 온화하기 그지 없는 양로원의 노인들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면서 늘그막에 그 편안한 환경에서조차 오만가지 감정과 문제를 겪는 심원한 드라마고, [헤어캐슬 터널을 통과하는 마지막 기차(The Last Train Through the Harecastle Tunnel, 1969)]는, 맙소사, 직장에서 무시당하던 철광이 주말에 짬을 내어 노선 폐쇄로 마지막 운행을 하게 된 기차를 타러 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엿보고 동료 철광들과 교류하는 괴상한 오타쿠 로드 무비다! 앞서 [피신처]가 무척 여성혐오적인 영화라고 했지만, 같은 프로그램에서 연출한 또 다른 단막극 [스텔라(Stella, 1968)]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질척이며 달라 붙는 머저리 남자에 시달리다 마침내 연을 끊고 자신의 독립과 자유를 찾는 여자에 관한 (좋은 의미에서) 교과서 같은 묘사를 담고 있다. 그런 각양각색의 영화들을 가능한 한 최상의 품질로 갈고 닦아 모아놓은 것도 모자라 인터뷰며 다큐멘터리를 있는대로 집어넣고 모든 수록작의 리뷰를 실은 200쪽에 가까운 책자까지 만들었으니, 이런 게 마르고 닳도록 보아도 재미가 줄지 않는 명품이요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뭐겠나.

 참, 주의사항 하나. DVD가 두 장이다. 맨 앞에 실린 단막극 여섯 편을 모은 디스크만 DVD라고 생각하다가 박스 세트 중간에 위치한 [정신 전사들(Psy-Warriors, 1981)]과 [바알(Baal, 1982)]을 수록한 디스크도 DVD여서 깜짝 놀라 BFI에 디스크가 잘못 들어 있었으니 Blu-ray 디스크로 교환해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가 '그건 둘 다 소스가 테이프라서 DVD로 수록한다고 안내해뒀는데요'라는 답변을 받는 민망한 꼴을 겪었더랬다.





1. I Knew Her Well (지역 코드 A / Criterion)


 당연히 알란 클라크 박스 세트를 이 자리에 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진입 장벽이 꽤 높은 타이틀이었던 만큼, 그보다 한결 더 편안하게 따라가면서도 발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던 [나는 그녀를 잘 알았다(Io la conoscevo bene, 1965)]를 2016년의 1위로 올린다. [순응자(Il conformista, 1970)]를 통해 알게 된 배우 스테파니아 산드렐리가 주연을 맡은 60년대 이탈리아 영화라는 것만 믿고 보았던 이 작품을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까. 쉽고 친절한 버전의 [밤(La notte, 1961)]이나 [일식(L'eclisse, 1962)]? 상영 시간이 더 짧고 여자가 주인공인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1960)]? 하지만 혼자 오롯이 설 자격이 충분한 영화를 굳이 더 유명한 동시대의 다른 영화에 기대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는 그런 손쉬운 호명에 반발하는 영화가 아니던가. [나는 그녀를 잘 알았다]는 흔하디 흔한 시골 처녀 도시 상경기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가져와 사건과 사건 사이를 듬성듬성 비워놓고 플롯을 걷어치운다. 스테파니아 산드렐리는 [순응자]와 유사한 백치미 이미지를 활용하여 출세를 꿈꾸는 순진무구한 아가씨인 척 등장하지만, 이내 생각조차 거치지 않고 튀어나오는 듯한 즉흥적인 행동들과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조금씩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판단을 흘려 보내면서 차츰 설명되지 않는 여백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만약 홍상수식 남자들의 주정이 싫어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을 꺼린다면(그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반성할 남자의 자리조차 없는 이 영화를 대신 권해도 좋으리라. "나는 그녀를 잘 알았다"라는 오만한 제목 안에는 "저를 아세요?"라는 반문이 깃들어 있으니. 아니면 아예 그냥 로마 관광 영화라고 생각하고 봐도 좋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도 그렇지만, 이 시기 이탈리아 도시 풍경을 담은 영화의 한계(?)는 제아무리 소외나 방황이자 좌절이나 환멸을 다룰지라도 어쨌든 생활 공간이 너무 근사하다는 것이니까. 비극적 몰이해를 향해 침잠하는 영화라고는 해도 가는 길 내내 눈은 황홀하다. 어찌됐든, 무엇에 끌려서든,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한다.





 그밖에 자잘하게 떠오르는 생각들.

 열일곱 편 중에 Shout! Factory와 Signal One 타이틀이 없어서 마음에 걸린다. Shout! Factory는 2016년에 정말 멋지게 날뛰었으나 내가 손에 넣은 타이틀은 대다수가 이미 훌륭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영화였고 더러는 Blu-ray도 출시된 적 있었기에 참신함이 덜했다. 수집가판으로 출시하지 않은 타이틀 중에 궁금한 게 여럿 있었건만 '이건 꼭 사야해!'를 챙기느라 더 적극적이질 못했다. Signal One도 타이틀 만듦새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영화의 만족도가 좀 부족했다. 그래도 [닥(Doc, 1971)]을 이야기하지 않아 못내 아쉽고, [세븐 업(The Seven-Ups, 1973)]은 이미 본 영화라고 해도 부가 영상을 생각하면 다시 꼽을 가치가 있었는데 괜히 완고하게 굴었나 싶다. 그나저나 2017년 출시작들의 출시 예정일이 무지막지하게 밀리고 있던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기를 빈다.

 무성영화도 없다. 무성영화 타이틀을 손에 넣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타이틀이 많았는데 충분히 관심을 쏟지 못했다. 보완할 부분.

 2017년 출시가 확정된 타이틀 중 2017년 결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리라 기대하는 타이틀도 꼽아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그러다가 많이 맞추면 정작 결산 목록이 재미없어질까봐 안 했다.

 영어 자막 잘 못 다루는 회사들이 안기는 고통은 여전했다. Warner Archive Collection은 왜 자막 표기에 기준이 없는가? [의혹(Suspicion, 1941)], [소유와 무소유(To Have and Have Not, 1944)], [깊은 잠(The Big Sleep, 1946)], [어두운 행로(Dark Passage, 1947)], [키 라고(Key Largo, 1948)], [그녀는 노란 리본을 매었다(She Wore a Yellow Ribbon, 1949)] 등은 모두 알맞은 크기와 위치와 색깔로 나와서 안심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On Dangerous Ground, 1951)], [수잔은 여기서 잤다(Susan Slept Here, 1954)], [한밤중 선악의 정원에서(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1997)] 등은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하는 자막을 사용했다. 그러면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줄어들고, 따라서 한 번에 세 줄짜리 자막이 뜨고, 가독성이 떨어지고, 이미지를 지나치게 많이 가린다. 더구나 [위험을 무릅쓰고]는 흑백 영화라는 이유로 노란색 자막을 사용해 고통을 가중했다. 그 뒤로는 도저히 안심하고 Warner Archive Collection 타이틀을 살 수가 없다. 원래 영어 자막을 안 넣던 곳도 아니고, DVD 시절의 경험이 그렇게 풍부한데 왜 그 꼴인지 알 수가 없다. 그에 비하면 Olive Films와 Vinegar Syndrome은 원래 영어 자막을 안 넣다가 넣기 시작해서 아직 서투르다고 생각해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싱크를 잘 맞추지 못하거나 자막 위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거나 흑백 영화에 노란색 자막을 사용하는 등의 행태로 타이틀의 가치를 깎아 먹었다. 앞으로도 웬만하면 그런 타이틀은 연말 결산에 넣지 않을 생각이다.

 Warner Archive Collection가 2016년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특히 리마스터링 화질은 정말 훌륭했다. 그런데 위의 자막 문제도 있고, DVD 시대에 Warner Bros.가 내게 안겼던 기쁨을 생각하면 지금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구나. 아마 내 고전기 할리우드 애호의 5할 이상을 Warner Bros. DVD가 책임졌을 텐데, 아마 DVD로 소개한 작품 중 Blu-ray로 넘어오는 작품은 채 5%도 되지 않겠지. 그래도 최후의 최후까지 [의혹]을 넣을까 말까 망설였다는 점은 말해둔다. 1위까지 본문을 다 쓰고도 망설였다. 스튜디오에서 개입한 결말이 별로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그 결말까지 포함해서 무지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나이가 들수록 히치콕의 초중기작들이 더 좋아진다.

 한국 타이틀의 패키지 고급화. 협소한 시장에서 수집가들의 비위를 맞춰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니 뭐라고 하기도 미안하지만, 그래도 불평은 해야지. 플레인이 아웃케이스와 엽서와 소책자 등을 동봉한 패키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소비자가 바라는 바를 잘 이해하는 회사의 참신한 접근 방식이었으나 이제는 다들 그런 패키지를 베끼기 시작하면서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늘 수납공간 문제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한국 타이틀 살 때 가장 망설이는 점이 두께가 너무 두껍다는 거다! 처음 DVD에서 Blu-ray로 넘어올 때만 해도 표준형 DVD 케이스보다 표준형 Blu-ray 케이스가 더 얇으니 하다못해 공간이라도 절약할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가 가능했다. 그런데 영국과 Criterion에서 표준형 DVD 케이스보다도 두꺼운 Blu-ray 케이스를 표준으로 채택해 나를 한 차례 좌절에 빠뜨리더니, 한국에서는 아예 틈만 나면 아웃케이스를 씌우고 소책자를 케이스 바깥에 집어넣고 있다. 잘 보지도 않는 엽서니 카드니 하는 것도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책자에 그렇게 글을 빼곡하게 싣고 싶으면 제발 Eureka라도 참조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결국 내용물보다는 외관에 훨씬 좌우되는 소비자들의 태도가 빚은 참상이니 속만 끓는다. TV 시리즈 등의 초대형 패키지에 이르러서는 DVD 때부터 끝없이 욕했던 문제라서 힘도 없는데, 다만 플레인까지 올드보이 디럭스 박스 한정판으로 내게 고통을 안길 줄은 몰랐다. 출고일 직전에야 박스 실물 이미지를 보여주는 바람에 그렇게 큰 줄도 모르고 받았다고! 박스가 좀 두껍다고 해도 스틸북과 책자 바깥을 바로 감싸고 있을 줄 알았어! 다른 판본도 있으니 아무래도 처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흙흙.

 그리고 제발 스틸북 애호도 좀 사라졌으면. 아니면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한 다른 판본도 스틸북이 아쉽지 않게 신경을 써주든가. 특히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스틸북 쪽에만 좋은 디자인을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속이 탄다. 하기야 그나마도 디자인 엉망진창인 스틸북 많지만.

 그런 맥락에서 2016년에 출시된 한국 타이틀 중 외관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타이틀은 미라지 엔터테인먼트에서 출시한 [빨강머리 앤] TV 시리즈 Blu-ray 박스 세트였다. 총 50화, 디스크 아홉 장짜리 타이틀인데 욕심부려 커다란 케이스를 만들지 않고 표준형 규격 안에서 밀도 높은 구성을 선보였다. 디지팩을 쓰지 않고 디스크 아홉 장을 한꺼번에 수납하는 케이스를 쓰거나 했으면 부피를 더 줄일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면 지나치게 허름해 보이기도 하니까. 아름답기로 유명한 작품의 일러스트를 잔뜩 활용해 만든 디지팩과 아웃케이스 디자인도 휘황찬란하고, 아웃케이스가 두껍고 단단해 내구성도 좋다. 물론 작품이야 말할 것도 없고 DVD 시절에 누락됐던 우리말 녹음도 추가했으며 자막까지 손보았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참고로 이 타이틀을 출시하면서 DVD 박스도 새로 내놓았는데, 그쪽도새로 그린 일러스트를 이용한 디자인이 아주 근사하다. 어차피 Blu-ray는 다 팔리기도 했고, DVD에도 Blu-ray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새 마스터를 사용했으니 Blu-ray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다면 DVD로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밖에도 [킬라킬]이나 [원펀맨] 등 미라지 엔터테인먼트 출시작 중 탐나는 작품이 여럿 있었는데 애니메이션 팬이 아닌 사람이 한 번에 거액을 투자해 TV판 애니메이션 박스 세트를 산다는 게 (특히 이렇게 살 만한 다른 타이틀이 넘쳐나는 시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닌지라 흘려보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외국 타이틀 중에는 패키지가 근사한 게 많은데, 반대로 최악을 꼽자면 단연 Martin Scorsese Presents: Masterpieces of Polish Cinema 박스 세트 제1권과 2권이었다. 단연 2016년의 돈 낭비. 아니, 기획은 훌륭하고, 이 타이틀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폴란드 영화들이 많다. 하지만 이 대리석 모양의 거대한 정육면체 패키지는 도대체. 안에는 작은 디지팩이 여덟 개 들어있고 남은 공간은 그냥 정육면체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모양을 내어 채웠을 뿐이다. 그나마도 빈 공간과 디지팩 두께 계산을 잘못해서 첫 번째 박스는 안쪽 완충 공간이 찌그러져서 왔고. 얼마 전에 폴란드에서 출시된 제3권이 마지막인데, 기왕 샀으니 마저 완성할 것인가 고민된다. 가격도 한두 푼도 아니라서 씀씀이가 줄어든 지금은 부담이 크다.

 한편 외국보다 한국이 나은 점도 있으니, 당연히 포장이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육상 수송할 때도 파손이 생겨 인터넷 서점들이 완충 포장에 그렇게 신경을 쓰거늘, 해외 배송을 뽁뽁이 한 장 두른 봉투에 넣어 하는 건 무슨 배짱이야? 특히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뒤로 아마존의 포장 방식은 어마어마한 파손율을 자랑했다. 처음 이사 와서 몇 번 실험해 본다고 여기저기서 직송 주문했다가 주화입마에 걸릴 뻔한 뒤로 지금은 영국 주문 같은 건 서울 사는 사람에게 배송 대행을 맡기고 있는 형편이다. 출시사에서 직접 발송하는 경우는 조금 더 나은 편이지만, 하여간 이제 외국에서 온 소포 받는 게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 되었다. 미국 배송 대행 업체에 대해서도 할 말 많지만 그러다간 한도 끝도 없을 테니 넘어가기로 하고, 아무튼 그런 와중에 딱 한 번 어마어마하게 감동했던 게 (출시일 때문에 2016년 목록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Mondo Macabro의 [깊은 밤 갑자기(1981)]였다. 원래는 배송을 시험해 볼 작정으로 직송 주문을 걸어놓고 파손되면 바꿔달라고 하자는 심정이었는데 한정판이 순식간에 나가는 바람에 교환 물량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동네는 배송이 험한데, 파손 문제 없을까? 그냥 좀 더 안전한 지역에 사는 사람 통해서 받을까?' 하고 문의를 보냈더니 걱정 말라는 답이 왔다. 그래도 걱정이 되지. 그런데 도착한 소포는…… 와, 나는 그런 완충 포장은 예스24에서만 쓰는 줄 알았지. 충성에 충성을 바치리라. 참고로 [깊은 밤 갑자기]는 현재 일반판이 2월 출시 예정으로 등록된 상태고, 한정판 중 남은 물량을 이벤트성으로 판매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팟캐스트 중 CriterionCast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친구들 수다 듣듯 잘 듣고 있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점잖게, 물리 매체에 대한 애정을 나누는 창구가 흔치 않다. 최근 대표 운영자인 라이언 갤러거가 가족들에게 더 충실하고 싶다며 팟캐스트 활동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는 바람에 좀 심심해졌지만(특히 새 출시 소식들을 주 단위로 전하던 Off the Shelf랑 The Newsstand가 한꺼번에 중단된 게 크다), 그동안 자체 제작 팟캐스트 외에도 다른 Criterion 관련 팟캐스트를 모은 허브 노릇을 해온 덕에 다른 방송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실 나는 CriterionCast의 메인 에피소드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Criterion Close-Up을 더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같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Masters of Cinema Cast도 더 꾸준히 듣고 싶은데 이건 영국 영어라서 보다 집중력이 필요한 탓에 아직 완전히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누가 Twilight Time Cast는 안 하나? 하기야 그쪽은 일단 단골 해설자들의 음성해설을 듣는 것만으로 일종의 공동체를 느낄 수 있으니까.

 리뷰 사이트 중에서는 Cine Outsider를 가장 좋아한다. 여기도 친구 몇이서 운영하는 비영리 웹사이트로, 글의 길이와 품질, 정보의 정확성, 취향의 다양성, 시각적 가독성 등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리고 솔직히 알란 클라크 박스 세트를 전부 리뷰한 곳은 다 존경해야 하지 않겠나. 영국 타이틀만 다루기는 하지만, 미국 타이틀까지 다루었더라면 도저히 이 정도로는 운영할 수 없었을 테다. 여기도 최근에 다들 개인사 때문에 영화 보고 리뷰 쓸 시간이 부족하다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코너를 정비하고 돌파구를 마련하려 애쓰는 모습에 다시금 존경심이 솟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응원을 보낸다.

 DJUNA의 영화 낙서판 회원 리뷰 게시판에 올라온 Q님의 "2016년 최고의 블루 레이 스무 타이틀"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당연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런 글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어 기쁘다. 한국어로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도 이런 영화들, 이런 타이틀들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라는 뜻이다. 머리로야 이미 알고 있더라도 또 직접 목도하는 기쁨은 남다르다.

 아이고, 쓰다보니 끝이 없네. 이제 그만 써야겠다. 과도한 해였으니 과도하게 써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덕분에 고생 잔뜩 했다. 읽는 분들께는 조금이나마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그리고 비슷한 취미 누리시는 분 중 혹시라도 나 혼자만 이러고 사는 거 아닌가 하셨던 분 계신다면 동지애는 조심하시되─성급히 투사한 동질감은 위험한 법이니─한국에 살고 한국어 사용하는 인간 중에 이런 인간이 또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 느끼셨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끝으로 2016년에 손에 넣은 타이틀 전부를 꺼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즉석에서 위의 열일곱 타이틀과 기타 후보에 올라갔을 법한 타이틀을 추려 단체 사진을 찍었다. 물론 여기에도 빠진 타이틀은 있다. 올리자마자 [괴물(The Thing, 1982)]은 어디 갔어?! 싶더라니까. 그럼, 2017년에도 물리 매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기약하며!







0. Hangmen Also Die! (지역 코드 B / Arrow Films)


 끝내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2015년에 Cohen Media Group에서 출시한 미국판 Blu-ray와 내용물은 같고 소책자와 영어 자막만 추가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타이틀로 처음 보았으니까. 기껏 할인 기간 노려 미국판 사놓고 자막 때문에 1년 가까이 감상을 미루다 보니 Arrow Films에서 출시를 발표하지 뭔가. 그래서 또 기다리다가 사서 마침내 봤다. 프리츠 랑 훌륭한 거 웬만큼 실감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롭게 감동하면서 '그간 그렇게 좋아했어도 그게 과소평가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고 마니 어쩌겠는가. 프리츠 랑 영화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만든 반 나치 스릴러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데,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Hangmen Also Die!, 1943)] 역시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는 프리츠 랑 영화였다. 뭐가 좋은지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요롭고 언제나처럼 위험하고 교활하다. 괜찮아, 이건 0순위니까 그렇게까지 말 안 해도 돼. 나만 좋아도 됩니다. 2017년에 프리츠 랑 영화 더 나오려나. [피곤한 죽음(Der müde Tod, 1921)]은 Eureka에서 나오겠지만 미국 시절 영화들 더 나오면 좋겠다. 못 본 영화 나와도 좋고, 봤지만 영어 자막 없는 DVD나 Blu-ray로 갖고 있는 영화 나와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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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 Go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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